그대를 생각하는 동안 저녁이

안경라

저녁이 낯선 사람처럼 오고 있다
낯선 사람 앞으로 서둘러 지나가는 바람 몇 개
바람의 음지를 건너서 저녁이
어기적어기적 오고 있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가로등 불빛처럼
외로운 사람들을 통과하는 시간의 나이는
지구 위에서 반짝이는데
아득한 그대가 홀로 바다를 거닐고
바다로 침몰하는 저녁노을
배웅 없는 이별의 색깔들이 찬란하다
바다아 하고 깊게 발음을 하면
그 음절 끝으로 와 닿는 하늘
검푸른 추억이 침묵을 깨고
파도 능선 따라 달음질쳐와
모래알 같은 시간을 씻고 또 씻을 때
저 짭짤했던 한 때의 사랑, 먼 내가
낡은 술잔을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하는 동안 저녁이
오래된 사람처럼 오고 있다.

 

[시평]

그대를 생각하는 저녁은 어떤 저녁일까. 어쩌면 그 저녁은 느릿느릿 저물어가는 저녁이리라. 어두워 오는 사위를 밝히며, 하나 둘 밝혀지는 가로등 불빛처럼, 외로운 시간들이 우리의 주위를 둘러싸고, 배웅 없는 이별의 색깔들로, 바다 멀리 서서히 붉은 노을 무너지는 저녁. 오래된 술잔을 비우고 또 채워도, 늘 우리의 아득한 그리움으로 가장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물결 마냥, 우리의 사랑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 있으리라. 그리하여 오래된 사람 마냥, 아니 전혀 낯선 사람 마냥 느릿느릿 저녁은 우리의 주변으로 어기적어기적 다가오리라.

사랑을 품은 저물녘의 바다는 언제고 쓸쓸하다. 떠나버린 사랑의 길고긴 그림자 끌며 저녁노을은 바다 저 멀리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슬픔에 겨워 바다아! 하고 깊게 발음을 하면, 그 음절 끝으로 검푸른 추억, 문득 다가와 우리의 침묵을 깨고 마는, 저물녘의 바다, 늘 아프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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