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흔히 음악(音樂)의 신동(神童)으로 알려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7남매 중 막내로 출생하였는데, 다른 남매들은 일찍 사망하였으며, 모차르트와 넷째 누이 난넬만 생존하였다.

모차르트의 부친은 당시 잘츠부르크 궁정악단 부악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바이올린의 교본’ 저자로도 명성이 있었다.

이러한 음악적인 가문의 배경에서 성장한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성(天才性)을 발휘하여 불과 5세 때 작곡을 시작으로 8세에 교향곡(交響曲)을 11세에 오라토리오, 12세에 오페라까지 작곡하였다고 하니 음악에 대한 그 천재성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762년 6세에 모차르트는 부친과 누나와 함께 유럽 연주 여행을 떠나 독일의 뮌헨을 시작으로 10세가 될 때까지 중부 유럽의 대부분 도시들을 여행하였으니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으로 본다.

모차르트가 이와 같이 어린 시절부터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공연한 점이 그의 음악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 점은 있었으나, 이에 반하여 마차를 타고 장기간의 여행을 함으로써 그의 발육과 건강에 지장을 준 점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면 모차르트는 이러한 특수한 환경으로 인하여 초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할 때에 다소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측면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천재적인 음악 감각을 소유하였던 모차르트였으나 모든 점에 있어서 완벽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1773년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에서 콘서트마스터, 오르가니스트, 작곡가로서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나, 이미 파리를 비롯하여 런던, 빈 같은 유럽의 대도시의 문화를 알고 있던 상황에서 궁정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해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였던 콜로레도와 맞지 않아서 힘든 나날을 보냈는데, 구체적으로 콜로레도 대주교는 모차르트를 자신의 수중(手中)에 두고 싶은 마음에 그의 외부활동을 제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러한 대주교의 방침에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 사표를 내고 빈을 떠나게 되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