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를 다니다 광복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광복 감격을 말로만 전해 들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얼마 전 방문한 서울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1945년 8월 15일 거리로 태극기를 들고 쏟아져 나온 사람들 사진을 보니 그제야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언젠가 광복의 느낌마저 희미해지는 날이 오더라도 후손들이 잊지 않게 하려고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로 지정해 기념식을 한다.

올해는 75주년 광복절이다. 지금까지 광복절 기념식은 광복의 기쁨을 되새기고 두 번 다시 나라를 빼앗기는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교훈을 새기는 행사를 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도 계기 교육으로 광복절의 의미를 알려준다. 하지만 올해 광복절은 기쁨과 교훈이란 의미의 광복절이 아닌 한쪽에 치우친 이념사를 한 김원웅 광복회장 탓에 국민이 반으로 갈리는 비극적인 날이 되고 말았다. 사회의 지도층이라면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려하고 행동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김 회장은 제75주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아무런 호칭 없이 ‘이승만’이라 호칭하며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안익태도 ‘민족반역자’로 지칭하며 애국가를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라고 폄훼했다. 그 후에는 한술 더 떠 애국가를 바꾸자고 하며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성경에는 간음한 여자를 길거리로 끌고 나와 돌로 쳐 죽이려던 군중에게 예수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자 군중들이 슬그머니 돌을 놓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했다고 떳떳하게 나서서 돌을 들 사람은 독립운동가 외엔 없다.

정부의 잘못으로 나라가 통째로 일본에 넘어갔는데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대부분 가족의 목숨을 생각해 소극적 친일을 안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도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니 아마 창씨 개명도 했을 것이고, 기미가요도 소학교 다니며 불렀을 것이다. 내가 일제강점기에 살고 있었다면 36년간 가족을 팽개치고 독립운동을 했을지, 울며 겨자 먹기로 목숨을 부지했을지 생각하면 독립운동에 목숨 바친 사람들을 위인이라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김 회장 자신이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공직에 몸담았던 사실은 ‘생계형’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한다. 성경에 있는 ‘제 눈에 들보는 안 보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본다’라는 말이 딱 맞다. 이 또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필자는 그 시절에 태어나지도 살지도 않았기에 문헌으로 전해지는 역사 외엔 잘 모른다. 제75주년 광복절에 광복의 벅찬 감격을 청소년들이 느끼고 광복의 의미를 알게 하기도 부족하다. 초대된 청소년도 앉아 있고 TV로 지켜보는 청소년도 많은 기념식에서 국민을 이념으로 둘로 찢어발기는 기념사를 하는 건 코로나19로 국가적인 위기상황에 처한 대한민국을 진정 위한다면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오히려 용서하고 화합을 가르쳐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지금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먼저 생각할 때 갑갑하기만 하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싸우면 아이들이 정서가 불안해져 올바르게 자라지 못한다. 하물며 나라의 지도층이 둘로 나뉘어 국가적인 대행사에서 이념논쟁을 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고 부끄럽다. 이런 나라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아닐 것이다. 친일은 분명 나쁜 행위다. 그 행위가 잘못된 걸 뉘우치고 6.25전쟁에서 앞장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면 용서하고 화해의 손짓을 내미는 모습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는 게 맞다.

앞으로 매년 광복절은 어떤 이념을 가진 당이 정권을 잡고, 광복회장이 되느냐에 따라 화합은커녕 매번 둘로 갈라질 것이니 차라리 광복절 행사를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은 진보니 보수니 관심이 없다. 요즘은 정치 얘기만 들어도 짜증부터 난다. 6.25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명이 죽임을 당하고, 이산가족이 되어 사는 나라를 만든 북한에 대해서는 화해의 손짓을 하면서, 그보다 더 오래된 역사에 대해서는 파묘까지 운운하며 단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해괴한 논리도 말이 안 된다. 더군다나 김정은을 위인이라 칭송하는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한 사람이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은 말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픔의 역사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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