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서울 영등포역 근처 성매매 집결지 모습. 4월 초부터 경찰 단속이 이어지면서 이곳은 예전과 같이 붐비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아울러 폐쇄에 따른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자 집창촌 관계자들이 가스통을 전봇대에 쇠사슬로 고정시켰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주변 전봇대에 굵은 쇠사슬로 단단히 고정된 가스통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계속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이곳은 말 그대로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18일 서울 영등포역 근처 집창촌. 양쪽으로 20여 개의 성매매 업소가 늘어선 가운데 전봇대에는 서너 개의 가스통이 굵은 쇠사슬에 자물쇠로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집창촌에서 일하는 여성과 업주들은 ‘대책 없는 집창촌 폐쇄는 중단하라’고 경찰·구청 등에 호소한 자신들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마지막 카드로 한바탕 전쟁 치를 각오를 한 채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앞서 이들은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근처 대형 쇼핑몰 타임스퀘어 앞에서 집회를 열고 “집창촌을 폐쇄하려거든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촉구를 벌였다.

“말 그대로 우리는 상황이 어떻든 간에 삶의 끝자락까지 온 사람들이에요. 용산 철거 때요? 그때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을 거예요. 이 가스통들 보면 알겠지만 다들 마음 단단히 하고 시위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요.”

잠깐 업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채이경(51, 가명) 씨는 “많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한창 잘 될 때 권리금을 1억도 더 주고 여기에 왔다. 지금은 대부분 50~60대인데 이주할 시간도 충분히 주지 않은 채 무조건 나가라고 하면 우리가 당장 갈 데가 어디 있겠냐”고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1일부터 이곳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사실상 영업이 중단됐다. 지난달 18일 성매매 집결지 폐쇄 방침이 발표되고 난 후 이달부터 경찰들의 단속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매일 경찰과 관계부처 관계자들이 입출구에서 단속을 하고 있다.

채 씨는 “우리도 길게는 수십 년간 세금을 내고 영등포 주민으로서 해야 할 도리는 다했다. 해결점은 찾으려 하지 않고 강압적인 단속만 하는 경찰에 서럽고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채 씨는 “혹여 이곳이 무력으로 없어진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기 때문에 업소나 성매매 여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들은 더 음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 씨에 따르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최근 단속이 심해지면서 국외로 나가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일본은 최근 발생한 지진 때문에 가지 못하고 호주 등으로 대부분 성매매를 하러 간다.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1대 1이라 신변을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이
많다.

강현준 한터전국연합회 사무국장은 “이번에 시위를 한 결과가 좋지 않다면 각오를 하고 전국적으로 한곳에 모일 계획을 하고 있다”면서 “최소한의 이주할 수 있는 기간은 줘야지 통보하고 한 달 만에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 강압적으로 단속하기보다 우리 입장을 고려해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
시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미용실을 운영한 손금순(80) 할머니는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이 머리를 자르러 많이 온다. 와서는 내 몸이라도 팔아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동생 학비를 벌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가슴이 미어져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며 이들이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영등포 집창촌 폐쇄를 공지한 경찰의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 대부분도 집창촌이 하루빨리 폐쇄되기를 기다리고 있어 지역과 집창촌 여성·업주들의 갈등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생 자녀를 두고 있다는 신명희(50, 서울 영등포 당산동) 씨는 “이들의 생존권까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식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없어졌으면 한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곽대영(21, 가명,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군은 “영등포에 살고 있지 않고 이런 곳을 이용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주민들이 원한다면 결국에는 없어져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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