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아무리 보아도 연화문이라기보다는 상수리나무 잎에 가깝다. 상수리나무 열매는 식량의 대용이기도 한 도토리다. 왜 고구려인들은 연판(蓮瓣)에다 나무 잎 선을 그어 상수리나무 잎처럼 만들었을까.

오랫동안 필자는 이것이 의문이 갔다. 이 상수리나무 잎 모양의 와당은 남한 지역 고구려 고토인 고려시대 절터유적에서도 많이 찾아진다. 연판은 작게 표현했으며 가운데 중심선을 만들고 방사선대를 장식했다. 필자는 이련 형태의 와당을 괴산 각연사, 청주지역 인근 절터에서 조사한 기억이 있다.

상수리나무는 한반도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수종이다. 경주박물관이 신라 왕성인 월성해자(垓子)를 발굴했는데 출토된 씨앗 가운데는 도토리가 제일 많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궁성의 외관을 감싼 것은 바로 상수리 나무였다는 것이다.

연화문와당(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8.24
연화문와당(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8.24

고구려 땅인 송화강 하류, 백두산 산록, 목단강과 흑룡강, 우수리 강 일대도 상수리나무 소나무 참나무 잣나무 등이 많이 자라는 밀림지대다. 평지보다는 산악에 분거하여 살던 고구려인들에게는 이 나무가 쌀 이상으로 중요한 자원이 아니었나 싶다.

속설에 상수리나무라고 이름 지어 진 것은 열매로 도토리묵을 만들어 임금의 수라상에 올린 데서 기인한다고 한다. 연꽃을 장식해야 할 와당에 이 나무 잎을 새긴 것은 열매의 대풍을 염원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이 와당은 중앙에 볼록한 구형(球形)의 자방이 있으며 도톰한 6엽의 연판(상수리나무 잎)으로 이뤄졌다. 간판(間瓣)은 선문이며 자방 동심원에 연결돼 있다. 간판의 끝은 삼각형에 가깝다. 외구에는 1조의 선문을 돌렸으며 주연은 무늬가 없는 소문대로 통식을 따르고 있다. 색깔은 적색이며 모래가 섞인 경질이다. 경 14.5㎝, 두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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