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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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석 거대 여당 국회가 비틀거리고 있다. 기업주 옥죄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익을 공유하는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법’을 내놓는다고 한다. 정부 여당은 노골적으로 사유재산제를 약화시킨다. 돈은 언제든 돈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 투자가 된다. 개인의 사유재산에 제약을 가하면 투자가 늘어나고, 기업 경영이 원활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품질 향상과 가격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윤이 남으면 또 투자하고, R&D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 선순환구조가 이념과 코드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는 착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니, 어느 곳에도 자본이 축적되지 않는다. 자본이 없으면 자본주의라고 할 수 없다. 자본 축적은 싫고, 자신의 권력은 계속 누리겠다면 이 또한 어불성설이다.

조선일보 사설(2020.06.20)에서는 “한국노총 내부에선 약 10조원 규모의 대기업 사내복지기금 적립금 중 30%를 상생연대기금으로 전용하는 방안까지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 사내복지기금은 근로자와 경영진이 땀 흘려 번 이익을 따로 모아 근로자 자녀 학자금 지원, 주택 자금 대출 등 사원 복지 용도로 쓰는 돈이다. 이런 돈을 다 나눠 쓰자니 강도 같은 발상과 얼마나 다른가”라고 했다.

적자 낸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사회적 가치’를 구실로 정부의 예산을 나눠, 성과급을 지불하자고 한다. 누가 봐도 ‘관여’와 보험, ‘촛불 청구서’임에 틀림이 없다. 기업은 많은 규제로 위축되기 다반사인데, 친 노동혜택은 한없이 늘리려고 한다. 법인세 25%까지 부과하고, 상속세는 65%까지 늘려 받는다. 기업가를 그렇게 혐오하면 정치인들은 ‘사회적 가치’, 이익공유제, ‘사내복지기금 공유제’를 한다고 한다. 중앙일보 전영기 칼럼니스트는 ‘메뚜기떼 닮은 민주당 정권(2020.08.03)’에서 “그들은 다수의 본능에 따라 걸리적거리는 소수들을 신속하게 휩쓸어 버린다. 풀꽃이든 곡식이든 동물이든 심지어 허수아비를 갉아먹는다”고 했다. 전체주의가 아니라 야만의 사회이다. 이익공유제, 가치공유제, 사회적 기업 등이 논리에 맞는 소리인지 궁금하다.

국가는 폭력을 합법적으로 쓰는 기구여서 한쪽은 이익공유제를 주도하지만, 다른 쪽은 폭력을 합법적으로 쓸 수 있다. 국가는 군과 경찰을 통해 폭력을 사용하는데, 최근 청와대는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경찰을 국내 일에 적극 개입시킨다. 폭력의 강도를 높여가는 증거가 된다. 기업을 혐오하면서 홍남기 부총리는 20일 수출입은행에서 ‘제2차 한국판 뉴딜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그 예산을 ‘20조원’으로 잡는다. 국가 권력이 시장까지 넘본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자유 시장원리에 의해 상행위를 하는 세계시장은 폭력집단이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한다. 청와대는 사회주의 경제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주도하겠다고 한다.

이런 발상이라면 기업가 혐오는 그 수준이 병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헌법정신을 망각한 행위이다. 더욱이 국회는 기업 옥죄는 법만 양산한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이 작동한다. 군사정권 때는 독재를 해도, 시장은 열어 놓았으나, 지금 청와대는 시장까지 막아버린다. 6공화국 헌법은 작동을 멈춘 것이다. 공정거래법, 상법 개정, 금융그룹통합감독법, 노동조합법 등으로 자본가를 옥죄고 시장을 옥죈다.

한국경제신문 전삼현 숭실대 교수(2020.08.12.)는 “‘상장기업법 제정안’ 폐기가 답이다”라고 했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서청대 담장을 걸어다니는 것 같이 위험스럽다. 전 교수는 “지난 7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상장회사에 관한 특례법(상장기업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취지는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분산돼 있는 상장회사 관련 규정을 통합해 별도 법률을 제정하기로 한 것’과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해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이 제정안이 상장사에 대한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가능한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상장기업법은 기업가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시장을 죽이는 법이다. 조선시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가는 지탄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자본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이야기했다. 전자는 도덕이나, 실천적 합리성을 확보해준다. 설령 후자의 인지적, 도구적 합리성이 있어도 전자가 받혀주지 않으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에 빠진다. 원래 자본주는 민주주의가 싹트기 전에 활성화됐다. 남녀가 평등하게 선거권을 가진 것은 20세기 중반이지만 자본주의 태동은 유럽에 농노가 해방된 14세기부터이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성장해온 체제는 반드시 거기에 맞는 사상과 윤리가 있기 마련이다.

공개시장은 자동조절 장치가 있고, 자기 검증원리가 있다. 지금같이 까다로운 시장의 원리는 국내용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보다 그 수준을 능가한다. 이 시장은 국내용 폭력 정치가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하는 큰 시장에서 활동한다. 시장의 기능은 도덕적, 실천적 합리성의 요소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권력을 얻겠다는 인지적, 도구적 합리성에도 국회, 검찰, 법원 그리고 언론에서 권력자의 탐욕을 제약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이 원리는 도덕적, 실천적 성격을 갖고 있다. 공동체가 유지되는 원리이다. 최근 우리사회는 그 견제기구가 망가지고 있다. 바른 정치는 시장과 같이 현장의 합리성을 요구하게 된다. 이념과 코드로 이해할 수 없는 시장의 자동조절 원리, 자기 검증원리가 있다는 말이다. 자본가를 혐오하면서 정치권력은 공정하게 나눌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장경제를 잘 다스리지 못한 국가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이유가 없다. 즉, 집에서 새는 쪽박이 밖에서 새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은 탐욕 덩어리가 움직이면서. 이익공유제, 가치공유제, 사내복지기금 공유제를 이야기한다. 다 거짓말이다. 그 뒤에는 무시무시한 폭력과 테러의 발상이 도사리고 있다(천지일보 칼럼, 202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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