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0.8.19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0.8.19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전염병이 좀처럼 종식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또다시 온 나라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2차 대유행까지 우려되고 있어서다. 그간 신속한 검사가 이뤄졌고 온 국민에게 현 상황을 알려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왜 종식되지 않는 걸까.

전염병은 오래전부터 참 지독한 병이었다. 역사 속에도 전염병 퇴치와 관련된 기록이 곳곳에 나와 있다. 그 속에는 고군분투한 장면도 담겨 있으니 하나씩 알아보자.

◆무서운 질병 ‘천연두·홍역’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전염병은 ‘두창(천연두)’이었다. 흔히 ‘마마’라고 불렀다. 건강한 사람도 천연두에 한 번 걸리면 회복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고열·통증·구토는 기본이고 얼굴이 변하거나 눈이 머는 사람도 있었다. 선교사 알렌이 기록한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1886)’에 보면, 4세 이전의 영아 40~50%가 천연두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럼 의학이 덜 발달한 그 이전에는 얼마나 심했단 말인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정도다.

이와 관련해 조선 순조 때 이종인은 두창 관한 의서인 ‘시종통편(時種通編)’을 편찬했다. 20여년간의 천연두 치료 경험, 직접 우두법을 오랜 기간 써본 경험, 우두법에 대한 다른 나라의 책들을 참고한 내용이 담겼다.

국립전주박물관의 자료에 따르면, 목민심서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 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홍역 치료법 책을 저술했다. 바로 ‘마과회통(麻科會通)’이다. 정약용은 아들 여섯과 딸 셋이 있었는데, 이중 아들 넷과 딸 둘을 천연두나 홍역으로 잃었다. 특히 아꼈던 둘째 딸과 넷째 딸을 잃게 되면서 슬픔에 빠진 정약용은 죽은 자식들과 세상의 아이들을 위해 1797년 이 책을 짓는다.

정약용보다 100여 년 전, 경북 영천시 임고면 선원동에는 정중기(1685~1757)라는 선비가 살았다. 그는 역병으로 부친과 모친을 모두 잃게 된다. 전염병이 확산되자 새로운 땅으로 옮겨 병을 이겨내고자 하여 지금의 삼매리인 매곡 지역으로 이주한다. 이곳에서 서재를 짓고 전염병을 피하며 틈틈이 공부한다. 오늘날로 치자면 스스로 자가 격리에 들어간 것이다.

역병 유행 시 친구의 안부를 묻는 편지 (출처:국립전주박물관)ⓒ천지일보 2020.8.19
역병 유행 시 친구의 안부를 묻는 편지 (출처:국립전주박물관)ⓒ천지일보 2020.8.19

◆고군분투한 조선 임금들
조선 세종대왕은 연이어 온 전염병을 경험으로 대안책을 만들어갔다. 먼저 1432(세종 14)년 4월 전염병이 크게 유행한다. 세종은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데, 긴급하지 않은 영선 공사(건축 공사)를 중단하라고 명을 내린다. 1434(세종 16)년에 또다시 전염병이 창궐했다. 이때 세종 처방문을 일일이 써서 전국에 배부했다. 여기에는 급성 전염성 질환에 대한 대비책도 있었다.

“상한역려(傷寒疫癘)에 한 자리(同床)에 거처하여도 서로 감염되지 않는 방문은, 매일 이른 아침에 세수하고 참기름(眞香油)을 코 안에 바르고, 누울 때도 바른다. 창졸간(倉卒間)이라 약이 없으면, 곧 종이 심지를 말아서 콧구멍에 넣어 재채기하는 것이 좋다.” (세종실록 1434년 6월 5일자)

1437(세종 19)년에도 전염병이 돌았다. 이때 한성부 내 두 곳에 진제장(賑濟場, 굶주린 자들의 무료급식소)을 두었는데 천여 명씩 몰려들었다. 하지만 집단 수용으로 전염병은 더욱 빠르게 번졌다. 1444(세종 26)년 전염병이 다시 돌았다. 세종은 이전에 전염병 사태가 떠올랐다. 이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다.

중종 때에는 전염병이 돌자 의서를 긴급히 해당 지역으로 보냈다. 1525(중종 20)년 5월 6일자에 보면 “‘벽온방(辟瘟方)’을 중앙과 외방에 반사하다”고 적혀 있다. ‘벽온방’ ‘간이벽온방’은 여러 가지 병 고치는 법이 적힌 의서다. 그런가 하면 1612(광해군 4)년 12월 함경도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번지자 광해군은 “전염병 재앙은 과언의 허물 탓”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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