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할 평화협정에 합의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할 평화협정에 합의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가 13일(현지시간)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BBC,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협상을 중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당사국 지도자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나흐얀 UAE 아부다비 왕세자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협상은 역사적이고 평화를 향한 돌파구”라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협상을 “진실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번 협정을 두고 ‘아브라함 협정’이라고 칭했다. 크리스찬, 무슬림, 유대인이 주를 이루는 나라의 지도자가 모였으니, 3대 신앙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이름을 땄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스라엘과의) 냉각 관계가 깨졌으니 아랍과 이슬람 국가들이 UAE를 더 많이 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다른 나라들과도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몇 주 내 백악관에서 협정 서명식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이 합의에 따라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합병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스라엘과 UAE는 투자, 관광, 직항로, 보안, 통신, 기술, 에너지, 의료, 문화, 환경 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도 협력하게 됐다. 또 UAE와 이스라엘은 대사관과 대사를 교환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문제 등으로 걸프 아랍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 이후 이집트와 요르단에 이어 세 번째 이스라엘의 평화협정이다. 이집트는 1979년에, 요르단은 1994년에 이스라엘과 협정을 맺었다. 모리타니아도 1999년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었으나 2009년 중단했다.

◆비밀리 진행된 합의… 트럼프 사위 쿠슈너 작품

이번 협정은 상당 기간 비밀리에 진행됐다가 급작스럽게 발표되는 등 기존의 전통적 협상 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몇몇 국무부 고위 관리를 제외하고 이 협정 발표에 대한 정보를 엄격히 통제했다. 익명을 요구한 두 명의 국무부 관리들은 CNN에 “이번 발표가 나오자 국무부 실무자들 대부분이 놀랐다”고 전했다. 지난주 미 정부 대표단이 UAE를 방문했을 때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문이자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번 협정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쿠슈너는 지난 18개월 동안 이번 협상을 사실상 지휘한 인물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옆에 서 있는 큐슈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13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외교관계 정상화 합의에 대해 질문을 받고 있다. (출처: 뉴시스)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13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외교관계 정상화 합의에 대해 질문을 받고 있다. (출처: 뉴시스)

쿠슈너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팀에 새로운 접근법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쿠슈너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은 실패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서 “이번 발표는 이 지역에 희망과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CNN에 “이번 협정은 게임 체인저”라며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틀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벼랑 끝 트럼프·네타냐후의 희망

이번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추진해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구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11월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 승리를 의미할 수 있고, 부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모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 시위와 더불어 압박에 몰리고 있고, 이스라엘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네타냐후 총리는 서안 합병을 약속했지만, 국제적인 반대에 부딪히면서 실현이 불투명한 가운데 이를 중단한 대신 아랍권과의 관계 정상화를 얻어냈다는 소득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UAE로서는 미국과의 관계가 강화되고 이스라엘과의 합의를 통해 경제적, 안보적, 과학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BBC는 전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UAE가 아랍 세계 지정학 측면에서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이스라엘, UAE를 묶어준 것은 하나의 적 ‘이란’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부 관리는 CNN에 “미 정부는 이번 합의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UAE와 이스라엘의 공동의 적인 이란을 장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다른 아랍의 수도에서도 화를 낼 가능성이 높지만 궁극적으로 이란과 대치하고 있는 더 많은 나라들 사이에 결속력을 창출할 것”이라고 이 관리는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에 나설 나라들이 더 있다고 한 발언과 관련, 이란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국가들이 이 협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서안 합병, 연기냐 파기냐

이번 합의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 합병을 중단하는 데 있다. 영국 등 나라들이 이번 합의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에도 서안 합병 중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중단’이라는 기준에 대해서는 협상 주최국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먼저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TV연설에서 서안 합병 계획을 지연했다고 밝혔지만 그 계획들은 여전히 책상 위에 있다며 서안 지역에 대한 합병 계획 자체를 포기한 게 아님을 밝혔다. 그는 “우리 주권을 미국과 조율해 유대와 서안지구에 전면적으로 적용하려는 내 계획에는 변화가 없다.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며 “이 문제는 아직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이스라엘 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서안을 합병하려는 강경파들은 협정 발표 후 분노를 나타냈다. 예샤 정착민 협의회장인 데이비드 엘하야니는 “그(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를 속였다. 그는 이 지역 주민 50만명과 수십만명의 유권자를 속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UAE와 다른 나라들은 이번 협정이 곧 서안 합병 계획 무산이라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안와르 가르가시 UAE 외무장관은 이번 합의가 이스라엘의 서안 합병에 대한 ‘시간 폭탄’을 막기 위한 “매우 과감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UAE가 이번 합의로 이스라엘의 서안 합병을 ‘보류’가 아닌 ‘중단’한다고 인식했음을 밝혔다.

그는 팔레스타인이 UAE를 비판한 데 대해서는 이 지역이 매우 양극화돼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래서 고민했지만 결국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서안 합병 중단에 대한 입장이 각각 다르더라도, 결국 이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서안 병합과 관련, 우선 워싱턴으로부터의 청신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알려졌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쿠슈너는 기자들이 이스라엘이 서안 합병 계획을 얼마나 오랫동안 중단할 것인지에 대해 묻자 답변을 거부했다.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요르단 밸리 파사일 마을에서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합병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이스라엘군과 충돌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요르단 밸리 파사일 마을에서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합병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이스라엘군과 충돌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팔레스타인 “UAE가 뒤통수쳤다”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이번 협상과 관련, 이례적으로 이웃 나라에 대해 강력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대변인은 TV를 통해 UAE의 행동이 곧 ‘반역’이라며 UAE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에 즉각 복귀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UAE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사실상 인정했다는 설명이다.

이란의 타스님뉴스는 이 협정을 “수치스럽다”고 평하고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무장 단체는 “우리 국민의 뒤통수를 쳤다”고 비판했다.

하마스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는 이례적으로 압바스 수반과 전화통화를 통해 이번 합의에 대해 ‘절대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고 하마스 관계자가 로이터에 밝혔다.

사우디에서는 공식 반응이나 언론 보도는 없었다.

예멘의 이란-동맹 후티 최고혁명위원회 위원장인 모하메드 알리 알 후티는 이번 협정이 팔레스타인의 명분과 범아랍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하난 아쉬라위 집행위원은 트위터에 “조국을 도둑맞는다는 고통을 결코 경험하지 않길, 점령 하에 갇혀 산다는 고통도 느끼지 못하길, 집이 철거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해되는 현장을 결코 목격하는 일이 없길, 절대로 당신의 친구들에게 팔려나가지 않길”이라고 올리기도 했다.

BBC는 이번 합의로 당사국들이 얻을 이익을 설명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있어서는 이번 합의가 그들을 다시 한 번 방관자로 밀어냈다는 좌절감 이외의 다른 것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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