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연꽃은 불가에서 가장 청정한 대상으로 삼는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도 더럽혀지지 않는 덕이 있다고 하여 불·보살이 앉는 자리가 됐다. 연화좌는 화좌(華座), 연화대(蓮華臺) 혹은 화대(華臺), 연대(蓮臺)라고도 불린다. 고미술전공 학자들은 연화좌의 양식으로도 조형시기를 가늠한다.

4세기 중반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연꽃은 어떻게 수용됐을까. 백제, 신라와는 완전히 다른 독창적인 모양을 창안했다. 백제, 신라는 남조의 영향을 받은 연화문을 사용했다. 불교초기 불상의 좌대나 연화문 와당을 보면 비슷하다. 경주지역 삼국시대 절터에서 출토된 와당을 보면 백제 와당으로 착각할 정도다. 넓고 두꺼우며 부드러운 면이 있다.

그러나 고구려는 갈대 잎처럼 연판이 좁고 끝은 뾰족하다. 연판이 작고 보잘것없지만 전체적인 도형에서 날카로운 고구려적 기상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연화문 와당의 기본적인 도형은 바로 작고 날카로운 모양의 연꽃으로 시작된다. 이 양식이 고구려 멸망시기까지 전승돼 발해 와당제작 기술에 접목되기도 했다.

부처의 눈을 ‘행안(杏眼)’이라고 표현한다. 살구 씨를 닮은 눈이라고 해 중국인들은 미인의 눈을 지칭할 때 이 용어를 쓰고 있다. 여성을 닮은 관음보살은 대부분 행안을 하고 있다. 뜬 듯 감은 듯, 반개(半開)한 눈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연화문 와당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8.12
연화문 와당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8.12

여기 소개하는 와당은 전체를 3등분해 연꽃과 간판(間瓣)을 배치했다. 가운데는 1조의 선문으로 싼 구형(球形)의 돌출된 자방을 만들었다. 연판은 3개이며 간판은 손을 벌린 사람의 형상이다. 1조의 선문으로 싸고 있는데 일직선으로 음각 선을 만들어 반개한 눈을 표현했다.

사람은 양 손에 깃발을 든 형상이다. 흡사 고구려 전사가 아군들에게 무엇인가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손의 양끝에는 또 입체감 있는 세모꼴 간판이 있다.

외구에는 굵은 1조의 선문대를 만들어 입체감을 더해 준다. 색깔은 적색으로 주연은 소문대이며 모래가 많이 섞인 경질이다. 경 15㎝, 두께 3㎝. 전 중국 지안 국내성 유적 출토.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