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린 가운데 시위대가 뛰고 있다. (출처: 뉴시스)
9일(현지시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린 가운데 시위대가 뛰고 있다. (출처: 뉴시스)

루카셴코, 6역임… 30년 이상 집권길

투표날 인터넷 불통·경쟁자 수감 논란

[천지일보=이솜 기자] 동유럽 벨라루스를 26년 동안 집권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대선에서 승리해 여섯 번째 임기를 이어가게 된 가운데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AP통신,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대선 출구조사 결과 루카셴코가 80% 가까이 득표한 것으로 나타나자 수도 민스크와 다른 도시에서 산발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민스크에서는 1천여명이 모였는데 경찰이 도심에 모인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고무탄, 물대포, 수류탄 등을 사용했으며 시위대 중 부상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도시인 브레스트, 고멜, 그로드노, 비테브스크에서도 시위가 발생했다.

체포자 수나 부상자 수에 대한 공식 발표는 없었으나 인권단체 비아스나의 빌야츠키는 AP통신에 수백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앞서 인터넷 감시단체 넷블록스는 벨라루스 전역에서 인터넷 접속이 중단됐다며 하루 종일 상황이 악화돼 ‘정보 손상’이 생겼다고 밝혔다. 야당 지지자들은 인터넷에 혼란이 생긴 사건이 고의적이며, 부정선거의 증거가 수집되고 공유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1994년 소련 붕괴 후 독립 벨라루스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대통령직을 제한하고 있는 헌법 조항을 삭제하거나 개헌하면서 26년간 집권해왔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 벨라루스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대선에서 승리해 여섯 번째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사진은 이날 민스크 투표소를 방문한 루카셴코 대통령. (출처: 뉴시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 벨라루스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대선에서 승리해 여섯 번째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사진은 이날 민스크 투표소를 방문한 루카셴코 대통령. (출처: 뉴시스)

2015년 마지막 선거에서 83.5%의 득표율로 당선됐으나 당시 경쟁자도 없었고 선거 참관인들은 표의 개수 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했다.

BBC는 이번 선거와 관련 “루카셴코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좌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치러졌다”고 평가했다.

지난달에도 민스크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수천명이 참석해 야당에 대한 탄압에 저항했는데, 이는 10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

비아스나에 따르면 지난 5월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지금껏 2천명 이상이 구금됐다.

제1야당 후보인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얻은 득표율 7%를 신뢰할 수 없다며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했다. 티하놉스카야는 “나는 내 눈을 믿을 것”이라며 “대다수가(표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티하놉스카야는 대선 출마를 준비하다 사회 질서 교란 혐의로 지난 5월 말 당국에 체포된 반체제 성향의 유명 블로거 세르게이 티하놉스키의 부인으로, 수감된 남편을 대신해 출마해 선거 운동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번 반정부 집회도 티카노프스카야가 주도했다.

티하놉스카야 외에도 다른 야당 대선 후보자들이 2명 있었으나 한 후보는 수감됐고, 한 후보는 러시아로 도주하면서 티하놉스카야가 최종적으로 루카셴코에 대항하는 후보가 됐다.

벨라루스 대선 후보인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가 9일(현지시간) 민스크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넣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벨라루스 대선 후보인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가 9일(현지시간) 민스크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넣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대선 캠페인 기간 나타난 ‘티하놉스카야 돌풍’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오랫동안 침체된 소련식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가운데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인구 950만명의 벨라루스에서는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6만 8500명 이상, 총 58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당국이 사망자 수를 축소 발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정신병’이라고 일축하고 취약한 나라의 경제를 망칠 수 있다며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 조치 등을 하지 않았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됐었으나 운동을 한 덕분에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빠르게 회복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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