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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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같은 기후권대가 분명하지만 대륙에 인접한 북한과 해안에 둘러싸인 한국은 기후조건이 조금 다르다. 장마전선으로 인한 비 피해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의 경우 댐 건설이 제대로 안 돼 특히 장마피해가 크다. 보통 북한에서는 장마피해를 큰물피해라고 부른다. 최근 북한 기상청은 주요 댐들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 중 금야호는 함경남도 지역 대규모 수력발전소인 금야강 군민발전소가 위치한 저수지며, 예성호는 북한의 최대 쌀 생산지인 황해도에 있다. 또 대동강과 순화강 아우라지는 수도인 평양 인근이라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평양은 지난 2007년 대동강 범람으로 큰 수해를 입은 전력이 있다. 북한은 장마가 시작된 지난달 19일부터 19일째 쉼 없이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강원도 금강군 도로가 흙탕물에 잠긴 사진 몇 장만을 공개했을 뿐 아직 수해 여부와 이재민 현황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의 큰물피해상황을 현지에서 요해했다. 최근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내린 많은 비와 폭우에 의해 은파군 대청리 지역에서 물길제방이 터지면서 단층살림집 730여동과 논 600여 정보가 침수되고 179동의 살림집이 무너지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김정은은 은파군 대청리 일대의 많은 살림집들과 농경지가 큰물로 침수됐다는 상황을 보고받고 피해현장에 나가 실태를 직접 요해하면서 피해지역 복구와 관련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를 밝혀줬다고 북한이 밝혔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중호우로 제방이 터진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의 홍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일본산 SUV 차량이 등장했다. 도요타의 렉서스 LX570 모델로 추정되는 차량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7일 수해를 입은 북한 주민들이 SUV 운전석에서 내리려는 김 위원장을 향해 달려가며 반갑게 맞이하는 장면과 김 위원장이 차량 운전석에 앉아 창밖의 수행 간부에게 지시하는 장면 등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이 탄 SUV 차량의 바퀴 등은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김 위원장이 일부 흙길 구간을 직접 운전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은 피해 상황을 필요에 따라 공개 하거나 숨기는 양면 전술을 쓰고 있다. 즉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할 때는 공개하고 그렇지 않고 숨기고 싶을 때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피해 현장 시찰로 피해를 간접 홍보하고 있다.

북한 매체가 지난 2015년 김 위원장이 경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비행기를 운전하는 모습을 공개한 적은 있지만, 차량 운전대를 잡은 모습을 보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중앙TV 보도를 보면 김 위원장은 피해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물에 잠긴 살림집과 논밭을 바라보며 근심스러운 얼굴로 찡그린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SUV를 몰고 흙길을 달려 수해현장 인민들에게 직접 다가서고, 또 인민들의 고충을 걱정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북한 인민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

통일부는 북측에서 피해 상황에 대해 밝힌 것은 없지만, 폭우 상황이 심각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 기상수문국(기상청)에 따르면 오늘 저녁 대동강 수위가 경고 수위에 도달할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현재 폭우상황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 관영 매체에서도 호우피해로부터 농작물이나 농경지를 보호하자는 내용이 있었으나 북한이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피해 상황에 대해 밝힌 것은 없다”고 했다.

북한의 홍수 피해가 큰 원인은 간단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시절인 1970년대 초반부터 ‘대자연개조사업’을 벌인다며 산을 마구 깎아 다락밭을 많이 만들었다. 자연 벌거벗은 산은 장맛비가 내리면 엄청난 토사를 쏟아내 강바닥이 높아지고 범람하는 물을 감당할 관개수로는 무방비 상태다. 한국의 경우 산보다 벌방이 많지만 범람하는 집중 호우를 막아낼 수로와 하수도 시설이 부족한 취약성이 있다. 북한 인민들은 장마 후 식량부족과 생활고가 더욱 가중된다. 가뜩이나 어려운 올해 북한의 식량난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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