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not caption

미중 관계가 1979년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계속 밀어붙여 무역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에 대해 미국은 홍콩에 대한 특수지위 부여를 철회했다. 미국은 또한 중국의 주휴스톤 총영사관을 스파이 활동의 거점이라면서 폐쇄시켰으며, 이에 대해 중국은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을 철수시켰다. 물론 남중국해에서의 양국의 군사적 힘겨루기는 지속되고 있으며,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 공산당 정권 교체까지 거론했다. 현 상황은 한마디로 말해서 떠오르는 강대국과 패권국 사이의 갈등이다. 일부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 신(新)냉전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현재 중국은 과거 소련과 달리 사실상 ‘무늬만 사회주의 국가’로서 미국과 이념적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중국은 1당 집권 정당의 이름이 공산당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패권을 차지한 20세기 초 이래 미국 GDP의 40%를 넘는 경제 대국이 등장할 경우 무역, 금융, 자원 등을 무기로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첫 대상은 냉전 시절 소련이었고, 두 번째는 80년대 일본, 현재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은 세 번째이다. 미국은 소련에 대해 대규모 군비경쟁을 일으켜 엄청난 지출을 강요하는 동시에 중동의 질서를 비틀어 소련의 돈줄이었던 석유의 가격 하락을 유도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써 엔화가치를 급상승시켰는데 일본은 이후 30년 장기불황에 빠지게 됐다.

2019년 IMF 통계에 따르면 명목 GDP가 미국이 21조 4395억 달러이고 중국이 14조 1402억 달러이지만 구매력 평가 기준 GDP는 미국이 20조 2900억 달러이고 중국이 27조 8050억 달러이다. 중국이 경제 규모에서는 미국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볼 수 있으며 수치로 보면 미국이 뒤늦게 중국을 손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상황은 미국은 초조함이 깔린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중국은 당황하고 있지만 버틸 데까지 버텨보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래 중국의 대외정책 기조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장쩌민의 유소작위(有所作爲),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崛起), 시진핑의 대국굴기(大國崛起)로 이어져 왔다. 도광양회는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인데 실제로 중국은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면서 서방을 자극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중국이 1984년 홍콩 반환협정을 체결하면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허용한 것은 그러한 맥락이었다. 그런데 경제성장과 발전이 지속됨에 따라 중국 지도자들은 덩샤오핑의 유훈의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시진핑에 이르러서는 일대일로(一帶一路)로 대표되는 패권 추구 정책을 노골화했다. 미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냉전 시절 소련과는 달리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점과 중국의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길게 보면 시간은 중국 편일 수도 있는데, 왜 중국은 불필요하게 남중국해에서 세를 과시해 이웃과 척을 짓고, ‘황금 알을 낳는 닭’인 홍콩을 함부로 다루고 미국이 포기하지 않는 한 대만을 수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또한 왜 인도와 무력충돌을 불사하는 것일까? 지리적으로 중국은 무려 15개 나라와 접하고 있는데 그 중 파키스탄과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과는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러시아의 경우 한국에서는 외교적 수사만 보고 양국관계가 동맹에 준하는 관계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양국 관계는 한마디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이 중국을 심하게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에서 중국 편을 드는 나라는 거의 없다. 티베트 및 신장 위그루 자치구에 대한 정책은 중국 내부적으로도 긴장을 유발시키고 있다.

아무래도 중국은 너무 일찍 머리를 들었으며, 그래서 ‘중국몽’의 실현 여부가 불투명해 보인다. 시진핑이 도광양회, 임기주석제, 일국양제 같은 덩샤오핑이 만들어 놓은 초석을 대안도 없이 무너뜨린 가운데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을 주저앉히려는 현 상황을 본다면 덩샤오핑은 전염병과 자연재해까지 발생, 내우외환에 빠진 시진핑에게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