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음악의 성인 루드비히 판 베토벤 생애와 음악(2)
[문화 칼럼] 음악의 성인 루드비히 판 베토벤 생애와 음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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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하이든은 8세에 오늘날의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인 성 슈테판 대성당의 합창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의 깊은 신임을 받았지만 1749년 변성기(變聲期)에 접어들어 합창단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 이후 하이든은 친구 몇 명과 뜻을 모아 거리의 악사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인 1759년 당시 보헤미아의 칼 폰 모르친 백작의 궁정악장에 취임하였는데 바로 여기에서 최초의 교향곡(交響曲)을 작곡하였으니 이는 장차 100여곡이 넘는 그의 교향곡의 전주곡(前奏曲)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르친 백작의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았던 연유로 악단이 해산되는 바람에 실업자가 되어 다시 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 이듬해인 1760년 11월 가발업자의 딸 마리아 안나 켈러와 결혼하면서 비로소 가정을 꾸리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하였다고 하며, 훗날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하이든의 음악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헝가리의 후작이었던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빈의 아파트에서 거주할 때였으며, 그러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1761년 5월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의 궁정악단 부악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때부터 1790년까지 30년에 걸쳐서 이 가문과 깊은 인연을 맺었는데 특히 그의 강력한 후원자이었던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하이든이 악장으로 지휘하고 있는 궁정악단을 위해서라면 비용을 아끼지 않았으며, 더불어 하이든의 작곡활동에 대하여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이든은 이러한 자유로운 여건 속에서 우수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자유롭게 지휘하면서 실험적인 교향곡 연주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의 활동무대가 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심정으로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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