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한마디] 에너지 시장의 파워게임과 한-러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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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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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총 연장 1225㎞의 발틱 해저(海底) 가스관 부설 프로젝트(Nord stream 2)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의 가즈프롬이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기업들과 함께 추진해 2019년 말 완료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러시아산 가스 공급의 확대가 유럽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프로젝트 참여 업체들에게 제재 위협을 가하는 바람에 현재 공사가 독일 근해 160㎞ 지점에서 중단된 상태이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유럽에 대한 러시아산 가스의 공급이 크게 늘어나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가스 구매는 각 국의 선택인데 왜 시끄러운 것일까?

미국의 논리는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져서 소위 ‘에너지 안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일부 유럽국가들 가운데 특히 우크라이나가 반발하는 것은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우려해서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자국을 경유하는 가스관의 유용성이 반감돼 통과료 수입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국 셰일가스 업체의 이익을 위해 전면에 나서 관련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2018년 제정된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에 대한 제재 법률(CAATS)’에 따라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해저 가스관 부설 업체가 도중하차함으로써 공사가 중단된 상태인데 앞으로 압력을 더 높이겠다고 한다. 한편 러시아 측은 자국의 선박과 자금으로 금년 중 공사를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에 미국산 가스를 사라고 대놓고 요구하고 있다. 자유무역의 챔피언을 자처해온 미국이 동맹국에게 자기 물건을 팔려고 경쟁상대인 다른 나라 것을 사지 말라고 하면서 엉뚱한 안보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5G 통신 서비스 장비 가운데 중국 회사 화웨이의 제품은 정보 보안에 치명적이 될 수 있으므로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가스 구매에 대해서도 유사한 논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미국은 2011년에 개통된 Nord Stream 1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당시는 미국의 셰일가스가 국제시장에 본격 진출하기 전이었다.

미국산 가스는 러시아산보다 비싸고 배로 수송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급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독일 정부는 가격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이 있는 공급선을 선택할 수 있는 에너지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며 미국의 압력에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며 2008년 시작된 북한 경유 파이프라인 건설을 통한 러시아산 가스 수입 프로젝트에 대한 협상 전말을 복기해 본다. 이 프로젝트의 논의는 근거리에 저렴하고 안정적 공급원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기대와는 달리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2011년 한국정부는 중장기 에너지수급계획을 발표했는데 미국산 셰일 가스 수입이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2012년 1월 미국산 셰일가스를 연간 350만 톤씩 2017년부터 20년간 구매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당시 북한은 통과료 수입에 큰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우리 측은 가스관을 통한 수송에 대한 북한의 보장을 신뢰할 수 없고 러측 협상당사자인 가즈프롬이 자료 요청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는다는 등 협상 초기와는 달리 유보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2013년 3월 북한 변수를 들어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그런데 미국의 셰일가스가 가격경쟁력을 갖게 돼 국제시장에 본격 진출한 것이 2010년대 초반이었다. 2019년도 한국가스공사의 가스 도입 현황을 보면 도입선중 미국의 비중이 11%로서 최근 상당히 높아졌다.

한국가스공사는 2008년 이래 매년 러시아산 가스를 150만 톤 수입하고 있는데 계약이 끝나는 2028년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또한 만일 북미 핵 협상이 진전돼 대북 제재가 해제되고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사업이 다시 논의된다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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