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PG)[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출처: 연합뉴스)
월북 (PG)[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출처: 연합뉴스)

초병이 처음 인지했으나 제지 안해

배수로 12분 만에 탈출… 75분 헤엄

감시 장비에 월북 장면 7차례 찍혀

軍, 탈북민 월북 시점 영상 복구 못해

전문가 “무인화 경계시스템 도입 필요”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탈북민 김모씨가 북한으로 헤엄쳐 건너간 과정을 조사해온 군 당국이 31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우리 군 경계의 허점이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군은 철책 아래 배수로가 취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10년 가까이 그냥 방치했고, 순찰 점검도 지켜지지 않았다. 아울러 김씨가 헤엄쳐서 북한 땅을 밟기까지 감시 장비에 7차례나 포착됐지만, 이상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이뿐 아니라 탈북민 김모씨 월북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군 경계에 활용되는 감시 장비가 또다시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파악됐다.

◆합참, ‘월북 탈북민’ 동선 공개

31일 합동참모본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8일 새벽 2시 18분께 택시를 타고왔다가 연미정 배수로 근처에서 내렸다. 연미정은 인천시 강화읍 월곳리 해안가에 있는 정자(亭子)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돼있다.

당시 200m 인근에 있던 소초 경계병은 “새벽 시간 동네 주민이 택시를 타고 내리는 일이 가끔 있어 김씨를 간과했다”고 진술했다. 택시의 불빛을 봤지만 늦게 귀가하는 주민일거라 짐작하고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미정 바로 옆 배수로로 이동한 김씨는 새벽 2시 46분 한강에 입수했다고 합참은 밝혔다. 택시에서 내려 배수로를 벗어나는 데 12분밖에 걸리지 않은 셈인데, 그 과정에서 김 씨는 세 곳의 군 CCTV에 찍혔지만 무사통과했다.

“연미정 배수로엔 철근 저지봉과 돼지꼬리 모양으로 둥글게 이어지는 ‘윤형 철조망’이 있었지만 해당 장애물이 낡고 일부 훼손돼 '보통 체구의 사람'이 통과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합참은 덧붙였다. 여기에다 매일 두 차례씩 점검해야 하는 지침이 있었지만, 이것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강에 입수한 이후 조류를 이용해 북한 지역으로 향하기 시작한 김씨는 4시 황해도 개풍군 탄포에 도착하기까지 75분을 헤엄쳐갔다.

그러는 동안 김씨는 7번이나 군 감시 장비에 포착됐다. 이중 5번은 감시카메라에, 북한 땅에 오른 뒤에는 북쪽을 향해 있는 군 열상감시장비(TOD)에 두 번 잡혔지만 군은 별다른 조치를 하거나 이를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부유물이 많이 떠있던 데다 경계 감시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목표물에 집중하기 때문이라는 게 합참의 설명이다.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이날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감시 장비 중 특히 TOD는 탐지물에 대한 식별 기능이 월등하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인 식별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서 “담당병사가 실시간으로 알아채 초동 대처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경계 섹터(지역), 즉 경계의 범위가 너무 넓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해병대 1개 사단이 맡고 있는 경계 지역은 무려 255킬로미터에 달해 휴전선 전체 길이보다 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관련 대책으로 “군이 밝힌 것처럼 현재로선 장비 조작에 대한 교육 등이 이뤄져야 하고 나아가 목표물 발견 시 보고체계, 지휘체계 등 매뉴얼도 따져봐야 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최근 일부 지역에서 추진 중인 무인화 경계시스템을 조속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배수로에 설치된 경계시설물이 아무렇게나 오랜 기간 방치돼 있었던 것이나 경계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보인다”고 덧붙였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7일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김모 씨를 특정할 수 있는 유기된 가방을 발견, 확인하고 현재 정밀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28일 오전 김씨의 가방이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의 한 배수로 모습. 2020.07.28. (출처: 뉴시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7일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김모 씨를 특정할 수 있는 유기된 가방을 발견, 확인하고 현재 정밀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28일 오전 김씨의 가방이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의 한 배수로 모습. 2020.07.28. (출처: 뉴시스)

◆탈북민 월북 상황서 軍경계 장비 또 먹통

합참은 이번 조사 과정에서 해병대 연미정 소초의 TOD 영상을 검토하던 중 김씨의 모습이 저장되지 않는 부분, 즉 영상의 일부가 삭제된 것을 확인했다. 다만 합참은 ‘TOD 저장장치 오류로 인한 삭제였다’며 은폐 가능성에 대해선 일축했다.

군 경계에 활용되는 장비가 고장을 일으켰다는 것인데, 앞선 태안 중국인 밀입국 사건과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총격 사건 때도 장비 고장이 있었다는 점에서 ‘군의 장비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최 교수는 “TOD 장비는 정교한 계측장비로, 전자광학센서들로 이뤄졌다”면서 “민감한 장비를 운용하는 데 있어선 숙련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비 고장이나 오류는 장비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작의 미숙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운용병의 숙련도를 높이든지, 부사관급 이상의 간부들이 장비를 다루게 하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 보도를 통해 월북 사실이 알려지기 전인 지난 23일 TOD 담당자가 장비의 녹화 기능 장애를 해결하던 중 이를 저장용량 문제로 판단해 23일 이전 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이에 김씨가 월북하던 장면 일부도 소실됐다.

군은 TOD 담당자가 김씨 월북 과정에서 부대의 경계 실패를 숨기기 위해 고의로 삭제한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을 했지만, 거짓말 탐지기 등을 동원한 끝에 고의가 아닌 케이블 고장이나 전송 장치 오류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군이 지난 2019년 5월 초부터 이달 23일까지 녹화됐던 영상파일 64개를 되살릴 수 있었다면서도 김씨 월북 상황이 담겨있는 17일 오후 10시∼18일 오전 5시 사이의 영상은 끝내 복구하지 못했다고 밝힌 데 대해 의구심을 갖는 시선도 있다.

이에 군 관계자는 “과학수사 결과, 고의 삭제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국방부 과학수사와 민간업체가 동시에 복구했으나 영상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합참은 구멍난 경계 태세의 책임을 물어 수도군단장과 해병대사령관에 엄중 경고 조치를 내렸다. 강화도 지역 경계 임무를 맡고 있는 해병 2사단장은 보직 해임했다.

탈북민 월북 경로. 합동참모본부는 31일 인천 강화도 월미곳에서 발생한 탈북민 월북 사건에 대한 검열 결과에 따라 해병대 사령관과 수도군단장을 엄중 경고하고, 해병 2사단장을 보직 해임하는 등 관련자를 징계위에 회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출처: 연합뉴스)
탈북민 월북 경로. 합동참모본부는 31일 인천 강화도 월미곳에서 발생한 탈북민 월북 사건에 대한 검열 결과에 따라 해병대 사령관과 수도군단장을 엄중 경고하고, 해병 2사단장을 보직 해임하는 등 관련자를 징계위에 회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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