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천지일보 2017.11.29 DB
국가인권위원회. ⓒ천지일보 DB

“수사 목적 출국금지제도 개선 시급”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도주의 우려가 없었음에도 출국금지를 요청한 뒤 출국이 금지된 사실조차 알리지 않은 것은 거주이전의 기본권 등을 침해한 것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29일 인권위에 따르면 진정인 A씨는 “공직선거법위반 등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18일 검찰에서 출석조사를 받고, 지난 1월 24일 가족과 해외여행을 위해 공항에서 출국 수속 중에 출국이 금지된 사실을 알게 됐다”며 “성실히 검찰 수사를 받았고 경찰공무원 신분으로 도주의 우려가 없었음에도, 지방검찰청이 출국금지를 요청하고 출국이 금지된 사실조차 알리지 않은 것은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또한 A씨는 “검찰청에 출국이 금지된 이유와 기간 등을 문의했으나 수사상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이후 출국금지가 해제된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방검찰청은 “국민적 관심이 큰 의혹 해소를 위한 신속한 증거 확보의 필요성과 해외 도피 등 관련자들의 수사회피 가능성 등을 고려해 A씨를 포함한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했다”며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상 제반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출국금지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 A씨의 직업, 가족관계, 출입국기록과 출국금지 요청서 등 지방검찰청 제출 자료 등으로 볼 때 해외로 도피할 위험이 상당했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이유나 근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A씨가 검찰청에 출석해 장시간 조사를 받는 등 검찰수사를 회피하거나 불응했다고도 볼 수 없고, 추가 조사가 없었음에도 ‘공직선거법위반 등 사건으로 현재 수사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외도피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고려 없이 출국금지 연장을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출입국 관련 법령에서는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경우 요청 외에 대상자에 해당하는 사실과 필요한 사유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나, 해당 지방검찰청에서는 출국금지 요청서만 제출하고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소명자료를 첨부하지 않았다. 또 이에 대해 법무부도 별다른 확인이나 소명자료 요구 없이 출국금지 요청서만으로 출국금지를 결정했다.

인권위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중대한 사건이라 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해외 도피 가능성 등을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수사 관행은 용인될 수 없다”며 “만일 이와 같은 관행을 인정하게 된다면 범죄수사 목적의 출국금지는 지금보다 더욱 남용될 가능성이 매우 커질 것이며, 출국금지의 기본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편 인권위 조사 결과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3년간 수사 목적으로 출국금지를 요청한 건에 대해 법무부에서 승인한 비율이 98%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1월부터 지난 3월까지 기간 중 수사 목적으로 통지 제외를 요청한 건수(6036건)에 대해 법무부가 모두 승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인권위는 현재 법무부의 출국금지 심사가 출국금지 남용을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고 보고, 출국금지 심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심사절차 및 방법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범죄 수사 목적으로 출국금지를 하는 경우 출국금지 사실에 대한 통지 제외 요청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어 출국금지 미(未)통지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보고, 통지 제외 요청에 대해 법무부에서 보다 엄격한 심사를 하는 등 이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울러 출국지에 있어서 국민의 알권리가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출국금지 이의신청 기간(10일) 또한 지나치게 짧아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인권위는 ▲법무부장관에게 수사기관의 출국금지 요청에 대해 심사방법 및 절차를 개선하고, 수사기관에서 통지제외를 요청하는 경우 엄격하게 심사할 것 ▲검찰총장에게 소환의 용이함 등 수사편의에 따라 출국금지가 남용되지 않도록 소속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것 ▲해당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검사 등 관련자들을 경고조치하고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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