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국회에서 권력다툼으로 여야 충돌이 잦고 의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아니한 경우가 허다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의회 현 모습을 보면 그 행태는 국회와 오십보백보다. 지방의회가 중앙정치를 닮아가면서 풀뿌리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민의 대의기관인 지방의회는 집행부와 함께 지방자치제의 양축으로서 본연의 기능을 다해야한다. 다시 말하면 의회는 집행부가 지역발전과 주민복리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가를 일일이 감시감독하면서 공공의 이익에 우선해 직무를 성실히 수행해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염불보다는 잿밥에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 당적을 가진 지방의원들이 자기당에서 의장직 또는 상임위원장을 차지하기 위한 꼼수들이 의외로 많다. 법에 따라 또 순리대로 의정을 수행하면서 다수당에서 의장과 상임위원장을 맡는 것은 정상적인 의회 운영이라 하겠지만 때로는 욕심이 과해 법과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 무대포로 감행했다가 위법임이 드러나 사후 재판에서 져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따르고 있으니 한 마디로 성숙하지 못한 지방의회 문화다.

지난해 10월 대구시 동구의회에서 의정반란(?)이 일어났다. 동료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자 졸지에 다수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소속의원들이 이참에 자유한국당(현재 미래통합당) 출신 의장에 대해 적당한 구실로 불신임안을 제출하고 그들만이 참석해 일사천리로 의장불신임안을 의결했던바, 당시 ‘동구의회 의장불신임’건은 지방자치 실시 이후 사상초유의 일로 TK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지방의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그와 관련돼 지방자치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동구의회의장 불신임의결 건에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그 의결은 명백히 법적인 하자(瑕疵)가 있었다. 신분에 대한 불신임 결의는 의장의 권한을 빼앗는 행위이기 때문에 법 적격성 문제에서 엄격 적용되는 게 판례의 태도다. 비단 의원 신분 박탈 이외에도 어떤 의안의 의결에 있어서도 내용적 하자와 절차적 위법이 있으면 취소가 되거나 무효가 된다. 우리나라 대법원판례(대법원 1994.10.11.자 94두23 결정)에서는 ‘…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는 등의 절차적 하자가 있을 경우 위법하여 취소의 대상이 됨은 당연하다’는 판례가 이미 나온 상태인데도 대구동구의회 의원들은 그 사실을 간과했다.   

지방자치 실시 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특히 기초의회에서는 의회운영의 기본상식 문제에 대해 소홀하고 위법된 행위를 하는 것은 그만큼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거증이 된다. 그간 언론에 지적되거나 지역주민들의 반향 등 여러 가지 지방자치 정황들을 보건대 참다운 풀뿌리민주주의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중 집행부는 공무원으로 구성돼 있어 그나마 위법적 문제가 없다고 하겠지만 의원수가 적거나 정당의 입김이 강한 지방의회일수록 주민보다는 소속 정당의 방침이나 의원 개별적 선호에 따라 의회 운영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러한 것들이 기초단체에서 나타나는 정당추천제의 역작용 때문이기도 하다. 그 점을 우려해 필자는 기고를 통해 지방자치 발전과 지방의회의 능력배양 등에 관한 많은 글을 올렸고, 지난해 본란에 이 사건과 관련해 ‘급히 먹으려다가 체한 꼴’이 됐다는 글을 올리며 의장불신임 건에 대해 우려한 바 있는바, 지방자치 사상 초유의 일로 관심을 모았던 대구동구의회 의장 불신임에 따른 소송 건이 법정공방 끝에 지난주에 최종 결론이 났다. 역시 민주당 소속 구의원들이 급하게 먹으려다가 체한 꼴이 됐으니 체면을 구기고 망신만 당했다.  

법원판결은 원고(오세호 전 동구의회의장)의 승리였다. 7월 15일자 판결은 “… 피고의회에서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은 이 사건 불신임안에 대하여 제안 설명 후 질의․토론을 생략하고 곧 바로 표결절차에 들어가 불신임의결을 하였고, 본회의 당시 이 사건 불신임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질의․토론권을 포기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 이 사건 의결은 위와 같은 절차적 위법이 있어 취소되어야 하므로 불신임사유의 존부에 대하여서는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아니한다”는 결론으로 의장불신임안이 취소됐고, 오세호 전 의장은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불신임 의결에 참여한 구의원들은 소송 패소로 인한 원고의 소송비 부담 등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으니 당시 껄껄거리며 환호했던 민주당 구의원들의 ‘작은 반란’은 역시 무모한 일이었다.  

지방자치사상 초유의 일인 대구시동구의장불신임 사건은 여러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지방의원은 분명 지역주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주민을 위해 힘써야 함에도 소속 정당을 우선시하며 억지이론으로 권력 투쟁에 힘쓰면서도 법 규정을 위반했다는 점이다. 그같이 의회운영의 기본상식조차 모른 채 의장불신임안을 의결시켜놓고 희희낙락 좋아했던 대구동구의회 민주당 구의원들의 ‘작은 반란’은 결국 법원 판결에 의해 허탕이 됐으니 ‘누워서 침 뱉기’한 꼴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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