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14일 임기 후반 국정을 이끌 새로운 중심축으로 ‘한국판 뉴딜’을 직접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에 대해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 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세계를 선도하는 디지털 1등 국가로 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라고 소개했다. 한 달에 한두 차례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며 진행 상황을 챙기겠다고 하니 정권 후반기 최대 역점 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판 뉴딜’은 ①디지털 혁신 및 역동성을 촉진·확산시키겠다는 ‘디지털 뉴딜’ ②친환경·저탄소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그린 뉴딜’ ③고용·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안전망 강화’ 등 3가지 축으로 구성돼 있다. 2025년까지 총 160조원(국비 114조원)을 투입해 190만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코로나 충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금의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범정부 차원의 종합 경제 대책을 마련한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책의 비전, 실현 가능성, 그리고 재정 확보 방안 등 충분한 논의를 거친 종합계획이라기보다는 단기간에 급조된 정책이란 느낌이 든다. 거창한 구호와 선언적 계획들이 나열돼 있고 상당부분은 기존 정책을 재탕 삼탕해서 만든 것이다. DNA(데이터, 네트워크, AI)  산업을 육성한다는 디지털 뉴딜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고 그린 뉴딜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과 대동소이하다.

디지털 뉴딜은 정부주도가 아닌 시장의 자율과 민간의 창의로 발전시켜야 할 분야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포함한 제도개혁과 규제 완화가 선진국 수준으로 이뤄진다면 민간 부문이 충분히 주도해 나갈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보완대책도 필요하다. 거대 노조에 의해 왜곡된 노동시장 유연성을 회복시키는 노동개혁도 급선무다. 비정규직 차별과 사회 양극화, 청년세대의 절망 등에 대한 대책도 절실하다. 

그린 뉴딜 정책을 보더라도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 저탄소 분산형 에너지 확산,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이 포함돼 있지만, 그간 경제성장 동력이 됐던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조선·철강 등 기존 전통 산업을 어떻게 녹색화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은 없다. 또한 태양광·풍력·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만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사회안전망 강화에 2025년까지 11조 8000억원을 투자한다고 했지만, 그 실현 역시 회의적이다.

한국판 뉴딜을 시행하기 위한 재정, 총 160조원 확보 문제도 불명확하다. 지속적인 재원 마련과 재정 부담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 예산의 조정을 통해 할 것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정부 예산 증액을 통해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했다. 순수하게 정부 예산을 증액하려면 국비만 매년 평균 20조원 이상 증액돼야 한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2022년 5월까지인데 그 이후 재정 조달은 다음 정부의 몫이라는 뜻이라면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K-방역 성공을 통해 세계적인 코리아 프리미엄이 형성된 지금 ‘한국판 뉴딜’은 시의적절한 전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혔듯이 “정부의 마중물과 기업의 주도적 역할을 결합”해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국가주도형 성장에 의존성하고 있다. 성공을 위해서는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정부는 규제 혁파와 국가재정의 투명한 집행 등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민간의 주도적 역할을 유인하기 위한 경제·사회·노동시장의 재편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국민과 기업이 공감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입지 등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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