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호천사(순국장병) 유자녀를 사랑하는 모임 ‘천사모’ 홍석보 회장

 

▲ 홍석보(일지학원 이사장) 천사모 회장. (사진: 일지학원 제공)
처음엔 도움 거부하던 유가족
같은 군인 자녀 알고 마음 열어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지난 3월 26일 1주기를 맞은 천안함 순국장병들. 46용사 하나하나 사연마다 안타깝지 않은 게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건 남은 가족일지도 모른다. 특히 아빠를 잃은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주변 사람들도 가슴이 아프다. 이들을 조용히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 수호천사(순국장병) 유자녀를 사랑하는 모임’ 곧 ‘천사모’ 회원들이다.

 ◆연평해전‧천안함 유자녀 도우려 시작

‘천사모(회장 홍석보)’는 천안함과 연평해전 등 군 작전 중 순국한 국군장병 유자녀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처음 시작은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갑작스런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교전이 벌어져 참수리호가 침몰했던 제2연평해전 때이다. 홍석보(51) 회장은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이해영 원사 등 19명이 부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에 유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위치한 비봉중‧고등학교(학교법인 일지학원)의 이사장 홍석보 회장은 그 자신도 군인 자녀로서 유가족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고 말한다. 홍 회장의 아버지 홍성무 씨는 육군 대령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부상을 당해 한국으로 후송됐다. 다행히 회복하여 다시 베트남으로 파견됐지만 홍 회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그때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아버지를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가슴 아팠다지만 순국장병 유자녀들은 진짜로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라는 언덕과 울타리를 잃어버린 어린 유자녀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장학금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유가족들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연평해전 당시 갑판장이었던 이해영(59) 원사의 도움이 컸다. 홍 회장이 동병상련의 마음에서 유족의 마음을 헤아려 돕고자 한다는 것이 전달돼 결국 유족의 마음도 열렸다.

작년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홍 회장은 뜻 있는 지인을 모아 천사모를 만들었다. 유자녀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이제는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것. 작년 10월 7일 학교 개교기념일에 천사모 발족식도 함께 거행했다. 정태경 여주대학교 총장 등 21명이 뜻을 같이했다.

 

▲ 지난해 10월 7일 대한민국 수호천사(순국장병) 유자녀를 사랑하는 모임 곧 ‘천사모’발족식이 학교법인 일지학원 설립50주년 기념식과 함께 열렸다. (사진제공: 일지학원)

 

 ◆ “돕는 것만 아니라 돕는 방식도 중요”

천사모가 순국장병 유자녀를 돕는 방식은 이렇다. 5살부터 시작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매년 100만 원씩 장학금을 지급하고 대학생이 되면 200만 원을 지급한다. 원하면 뉴질랜드 유학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홍 회장은 2005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스포츠경영대학(CSM; Canterbury Sports Management College)을 설립했다. CSM 이사장으로 있는 홍 회장은 원하는 사람은 어학연수든 학과전공이든 학비를 비롯한 생활비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올해부터 2명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연평해전 유가족인 고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 김종선 씨와 부상자 이해영 원사의 아들 이근호 씨다.

홍 회장이 이들을 돕는 이유는 아버지를 잃은 유자녀들이 크면서 상처입거나 기죽지 말고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아버지 없이도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급하고 필요하면 뉴질랜드 유학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들이 그냥 교통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자녀들이 잘 돼야 좋은 나라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본인도 군인 자녀였으므로 남 일 같지가 않다. 그 심정이 어떨까 깊이 헤아리는 마음에 유가족을 도울 때도 최대한 조심스럽다.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그리고 명예를 존중하며 돕는다’는 게 홍 회장의 원칙이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에게는 작은 것도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돕는 것만큼 돕는 방식도 참 중요하다”면서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동원해 홍보를 크게 하고 성금을 모금하는 방식은 천사모에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 방식이 유가족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학금을 전달할 때도 차를 보내 모시고 오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전달식을 갖는 것 등도 홍 회장의 세심한 배려다. 연말에는 ‘애국의 쌀’이란 이름으로 쌀 한 가마니씩 기증한다. 적지만 정성을 담은 선물이다.

 

▲ 홍석보 이사장이 직접 쓴 ‘일지일도(一志一道)’를 새긴 돌. 한 뜻을 품고 한 길을 간다는 뜻이다.ⓒ천지일보(뉴스천지)

 

 ◆ “하나님께서 계속 도울 수 있게 하시길”

천사모가 돕는 사람들은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 유가족뿐만 아니다.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더라도 매년 순국장병과 유가족이 생기고 있다. 2010년 12월에 있었던 공군정찰기 추락사건, 2011년 1월에 발생한 해군 링스헬기 추락사건, 그리고 얼마 전 3월에 발생한 제주해역 해경 헬기 추락사고 등 안타까운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천사모가 도와야 할 사람들이 매번 늘어나는 것이다. 현재는 30여 명 정도가 된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도와야지…. 사고가 발생해서는 안 되겠지만 매년 유자녀들이 늘어날 겁니다. 그들을 돕는 게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 주셔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또 건강 주셔서 오래도록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천주교 신자인 홍 회장은 하늘이 도와주시면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 돕는 데 돈 다 써버리면 남는 게 없지 않겠냐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베푼 만큼 또 채워주더라”면서 이 일을 끝까지 하겠다고 전했다.

뜻이 좋은 만큼 특별히 홍보를 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을 모으지 않아도 주변에서 지인들이 돕는 손길을 더한다. 교직원 중에 조용히 성금을 보탠 사람도 있고, 작년 개교50주년에 우수교직원 표창을 받은 10명의 선생님들이 50만 원씩 기부를 했다.

비봉고등학교 교정에는 ‘일지일도(一志一道)’라고 홍 이사장이 직접 쓴 글씨를 새긴 돌이 있다. ‘하나의 뜻을 가졌으면 한 길을 간다’는 학교설립자인 할아버지 홍건표 씨의 가르침이다. 그 생각 그대로 홍 이사장도 교육 한 길을 계속 가겠다고 전했다. 순국장병 유자녀 장학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장학사업이 계속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 재단도 설립할 생각이다. 유자녀들이 클 때까지 돌보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지속돼야 할 사업이고, 해마다 안타까운 사고로 유자녀들이 늘어나는 실정이라 재단을 설립해 계속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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