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여쁜 걱정

고영

눈길에 꼬꾸라진 일곱 살 가영이가
겨우 몸을 일으켜 옷을 털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보더니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내곤
아무 일 없다는 듯
버스 정류장을 향해 절룩거리며 뛰어갑니다
복지관에 간 지적장애인 엄마가 돌아올 시간인데
엄마의 보행기가 되어줘야 하는데
다발로 쏟아 붓는 함박눈이
자꾸 가영이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눈송이만 한 눈망울에
걱정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시평]

세상엔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가족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사는 독거노인이며, 소녀가 가장이 돼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집. 중증장애로 인해 생계가 막연한 가정, 난치의 병으로 치료비도 없이 허덕여야 하는 눈물겨운 삶까지, 우리의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삶이 너무나도 많다.

일곱 살 어린 가영이는 지적장애를 지닌 엄마와 함께 사는 소녀이다. 엄마는 복지관을 매일 같이 간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엄마는 하루의 시간을 보내고는 집으로 온다. 지적장애를 지녔기 때문에 엄마는 혼자 집에 오지를 못한다. 이런 엄마를 가영이는 매일 같이 가서는, 엄마의 보행기가 되어서는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눈이 내린다. 그래서 길이 미끄럽다. 빨리 가서는 엄마를 모시고 와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달려가다가 그만 눈길에 고꾸라져버린다. 그러나 엄마에게 빨리 기야 하기 때문에 가영이는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내곤 아무 일 없다는 듯, 버스 정류장을 향해 절룩거리며 뛰어간다.

다발로 쏟아붓는 함박눈이 자꾸 가영이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엄마가 기다리실 건데, 가영이 눈망울에 눈송이만한 걱정이 그렁그렁 맺힌다. 아, 아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 걱정인가. 가영이에게 가장 소중한 엄마가 기다릴 생각에 가영이는 자신이 넘어져 피가 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참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가영이, 가영이의 마음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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