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최근 잇따라 두 거목이 우리들 곁을 떠났다. 한 시대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상징적 인물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 시민운동의 대부로 평가되고 있다. 거기에 서울시장 3선까지 역임하면서 차기 대선주자로 떠오를 정도였다. 백선엽 장군은 누가 뭐라 해도 한국전쟁의 영웅이다.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를 통해 낙동강 전선을 지켜 낸 장본인이다. 이것만 기억되면 좋았다. 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그들 앞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과 백선엽 장군의 이면은 그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커녕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도 많다. 박 시장의 성추행 사건은 정말 충격적이다. 여성인권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박 시장이 무려 4년간 지속적으로 비서를 성추행을 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은 일이다. 피해 여성의 절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백선엽 장군의 과거 친일행적은 역사에 기록될 만큼 아픈 대목이다. 당시 조선인들로 구성된 간도특설대는 항일무장투쟁 세력을 토벌하던 일제의 주구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의 잔인성과 악질적인 행태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백 장군은 그런 간도특설대의 장교였다.

이제 그들이 떠났다. 존경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추모하고 싶어도 쉬 곁으로 다가서기 어렵다. 성추행으로 시민들을 부끄럽게 만든 박 시장에게 서울특별시장(葬)의 예우가 맞느냐의 반론이다. 간도특설대 장교가 죽어서 국립현충원으로 가는 것이 맞느냐는 반론은 더 강했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주춤거렸다. 법과 제도도 미미했다. 그러는 사이 정치권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여론도 나뉘었다. 다시 그 지긋지긋한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의 프레임이 진영싸움으로 옮겨 붙었다. 국민의 상식이나 합리적 논의는 발붙일 곳이 없었다. 이번에도 ‘내편과 네편’의 싸움이다. 일부 언론은 여론을 선동질 하고, 그에 따라 SNS와 유튜버들은 춤을 췄다. 피해 여성의 눈물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두 거목의 죽음 이후 우리가 목격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쯤 되면 다시 국지불국(國之不國)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박원순 시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하는 것이 옳았다. 먼저 유족들이 의견을 내고 서울시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으면 좋았다는 뜻이다. 아마 박 시장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평소 서민적이고 약자의 아픔을 먼저 어루만졌던 박 시장이다. 지금도 피해 여성의 눈물이 너무도 절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체장의 장례에 대한 하나의 선례를 우리 사회에 남길 수 있다. 게다가 법과 제도로 이어질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역사와 미래를 통찰하는 선구자적 자세가 더 빛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서울특별시장(葬) 형식을 강행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백선엽 장군도 생전에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화답하는 것이 옳았다. 그동안 친일파의 현충원 안장이 옳으냐의 비판 여론이 수없이 쏟아졌지만, 백 장군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의 파묘 문제까지 공론화된 시점이다. 현충원에는 조국독립에 목숨을 내놓았던 순국열사들이 잠든 곳이다. 백 장군은 그런 선열들과 함께 잠들 수 없는 사람이다.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기억되고는 있지만, 순국선열을 뵐 면목이 없다면서 생전에 스스로 현충원 안장을 반대했다면 얼마나 많은 교훈을 후세에 남기게 되겠는가. 백 장군이었기 때문에 그런 결단도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특별한 얘기도 없이 죽어 갈등만 커지게 만들었다. 현충원에 잠든 순국선열들까지 부끄럽게 만들고 말았다. 이 또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제 법과 제도의 문제도 짚어 봐야 한다. 우리는 미처 이런 문제, 즉 비극적 죽음에 대한 예우의 문제를 정비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민주화의 진전을 거론하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주변까지 심화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의 장례와 관련해서 전례도 없고, 법규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장례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준해서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법도, 전례도 없기에 통상적인 가이드라인에 맞춘다는 것은 전형적인 관료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무슨 일로 세상을 떠났는지가 문제의 본질이다. 장례가 하나의 예라면, 그 예의 본질을 모르고서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추모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백선엽 장군의 사례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다. 백 장군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의 적용을 받았다. 백 장군은 대한민국 첫 육군 대장으로서 무공훈장까지 받았다. 현충원 안장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다만 과거 친일 행위에 대한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법률 사항에 없다. 게다가 현충원에는 이미 다수의 친일파들이 묻혀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김백일도 있고 송석하도 있다. 그렇다면 왜 백선엽은 안 된다고 하는지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그때그때의 여론에 따라 현충원 안장 문제를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소모적인 논란만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박원순 시장의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고위공직자들이 불미스런 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장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과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리고 친일파들의 현충원 안장을 막겠다면 먼저 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마침 김홍걸 의원이 관련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이다. 통과된다면 친일파들의 묘를 파내더라도 더 이상의 논란을 끝낼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준 민심이 무엇을 말하는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소모적인 정쟁이 아니라 행동으로 화답해야 한다. 부디 우리 주변의 죽음까지 조롱거리로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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