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왕십리

권달웅(1944 ~ )

 

1964년 초겨울 역마다 서는 완행열차는 경상북도 봉화에서 청량리까지 아홉 시간이나 걸렸다. 어머니가 고추장항아리 쌀 한 말을 이고 내린 보퉁이에는 큰 장닭 한 마리가 대가리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이십오 원 하는 전차를 탔다. 사람들은 맨드라미처럼 새빨간 닭 볏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 나는 닭대가리를 보퉁이 속으로 꾹꾹 눌러 넣었다. 아무리 꾹꾹 눌러 넣어도 힘 센 장닭은 계속 꾹꾹거리며 대가리를 내밀었다.

빨리 전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손바닥에서 진땀이 났다. 전차는 땡땡거리고 가도 가도 왕십리는 멀기만 했다.

 

[시평]

60년대만 해도 먼 경상도 산골마을 봉화에서 서울로 학교를 온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대도시 서울로 유학을 가는 아들과 함께 완행열차를 타고, 모자는 경상북도 봉화에서 청량리까지 아홉 시간이나 걸려서 서울로 올라왔다. 고추장항아리며 쌀 한 말, 그리고 살아있는 장닭을 보퉁이에 싸가지고, 그렇게 아들이 다닐 학교 근처에 얻어놓은 자취방을 찾아 올라왔다.

삼 시 세 때 밥을 지어먹으려면 당연히 쌀이 있어야겠고, 찬거리라도 만들어 먹으려면 된장이나 고추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쌀 한 말과 고추장을 한 항아리 들고 기차를 탔다. 그리고는 아들 몸보신할 살아있는 닭을 한 마리 보퉁이에 싸서는 가지고 올라왔다.

청량리에 내려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는 보따리 보따리를 지니고는 전차를 탔다. 아들 몸보신 하는 건데. 장닭이 맨드라미 같은 새빨간 벼슬을 보퉁이 밖으로 내밀어도, 그게 뭐 대수인가.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 대학교 근처로 방을 얻어 가는데, 대학엘 다닐 아들 생각만 하여도 대견하고, 절로 웃음이 나오는데. 쌀이며 고추장항아리며 장닭을 싼 보퉁이가 뭐 문제인가.

그러나 아직은 부끄러움을 타는, 이제 신출내기 대학생이 될 아들은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자꾸 맨드라미처럼 새빨간 볏을 단 머릴 치켜드는 닭대가리를 보퉁이 속으로, 아무리 꾹꾹 눌러 넣어도 함 센 장닭은 계속 꾹꾹거리며 대가리를 내민다. 전차는 진종일 땡땡거리고 간다. 말로만 듣던 왕십리는 멀기만 했다. 치켜드는 장닭 벼슬, 그렇게 머나먼 서울 왕십리 가는 그 길은, 그만 손바닥에 진땀이 나는 그런 곳이었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