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백선엽’이 대전 현충원에 묻혔다. 국립묘지 안장 문제로 논란이 뜨거운 한 주였다. 한쪽에서는 한국군의 뿌리이자 불세출의 영웅으로 평가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족 반역자이자 민간인 학살자라고 평가한다. 어느 쪽의 말이 옳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민간인 학살은 빼고 항일세력 토벌 행위에 대해서만 생각해 본다.
우리 민족은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으로 국토가 참절당하고 민족이 절멸당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동학농민군을 시작으로 수많은 선열들이 총과 칼, 죽창, 낫을 들고 전투를 벌이거나 일본군의 군용선을 절단하다가 전사했다.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가 본격화되자 우리 선조들은 일신을 돌보지 않고 간도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러시아로 미국으로 향했다. 국권 회복과 독립 쟁취를 위한 행렬이었다. 국내에서도 선열들이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독자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내 나라 내 민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 내놓고 독립전쟁과 독립운동에 참여한 위대한 선조가 있는 반면에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조선총독부, 일본 경찰 기관에 자원해 조선인을 억압하고 착취 수탈하고 살해하고 체포하고 고문하는 대열에 참여한 조선인들도 있었다.
일제의 식민지 권력기관인 만주국에서 운영하는 만주군관학교나 일본육사에 자원 입교한 뒤 일본제국 군대의 지휘부의 구성원이 된 자들이 있다. 박정희, 정일권, 백선엽, 신현준, 이한림 같은 인물이다. 독립군과 항일군대를 초토화시키기 위해 양성하는 일본 제국주의 군사학교에 자원입대하고 일본제국 장교계급장을 달고 조선독립군과 아시아 여러 나라 독립군으로 구성된 항일연합무장세력을 토벌하는 대열에 나섰던 자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 민족 반역자 또는 민족 배반자라는 이름 말고 더 좋은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제국주의 침략국과 그 군대는 우리 민족의 원수다. 우리의 적인 일본제국의 군대에 자원입대, 그것도 장교 코스를 밟은 것은 혈연적으로는 우리 민족 구성원이지만 민족의 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해방 후 한국군의 중추가 됐다. 어떤 반성과정도 없이 승승장구했다. 미국의 잘못된 점령정책 때문이다.
백선엽은 일제가 항일 조선독립군과 항일무장 세력을 절멸하기 위해 특별히 조직한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하게 된다. 백선엽, 정일권, 신현준, 원용덕, 김백일이 속해 있던 간도특설대는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조선인 부락 가옥 전체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른 악명 높은 특수군사 조직이다. 조선인에 의한 조선독립군 제압이 목표였다.
백선엽이 자신의 저서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라고 스스로 인정(간도특설대의 비밀, 1993)하고 ‘간도선 일대는 게릴라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계속하여 치안활동을 하느라 바빴다(젊은 장군의 조선전쟁, 2000)’고 말했음에도 일부 통합당 의원들이나 일부 인사들이 백선엽이 활동할 때는 독립군이 없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백선엽을 편드는 건 자유이지만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는 건 곤란하다.
백선엽이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많다. 침략국 군대의 장교였고 조선 독립군과 피침략국의 항일연합군 토벌에 나섰던 자가 해방 뒤 어떤 역할을 했다고 해서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건 정의에 어긋나고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행위이다. 순국선열들에게 죄송한 일이다. 침략국의 주구 노릇을 한 자가 해방된 조국의 국립묘지에 묻힌다는 건 후세는 물론 세계 시민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통합당이 밤낮으로 외쳐대는 ‘백선엽 영웅론’과 국립묘지, 그것도 서울 현충원에 묻혀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위험하다. 영향력 있는 수구보수 언론 매체와 육군을 중심으로 한 백선엽 영웅화 작업에 익숙한 사람들은 통합당의 행동에 의문을 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선엽이 살아온 과정을 보면 영웅이 아니라 민족 반역자, 그것도 반성하지 않고 죽은 민족 반역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