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삼계탕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문화곳간, 삼계탕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궁중·양반가, 민어요리 즐겨

삼계탕의 옛 이름은 계삼탕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초복(初伏)이다. 여름 중 가장 뜨거운 날로 꼽히는 복날이 되면 원기회복과 관련된 식품이 마트 곳곳에 쌓인다. 대표적인 음식이 삼계탕이다. 왠지 복날 음식을 챙겨 먹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더운 복날에 어떤 음식을 먹었던 걸까.

◆“더운 여름, 기를 보해야”

복날(伏─)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초복·중복·말복을 뜻한다. 삼복(三伏)은 여름 중 가장 뜨거운 기간이다. 중국의 ‘사기’에 보면, 진(秦) 덕공(德公) 2(기원전 676)년에 처음으로 복날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기라는 의미에서 높은 관리들에게 쇠고기와 얼음을 하사했다. 일반 서민은 귀한 쇠고기 대신 개고기를 끓여 먹었고 시원한 계곡을 찾아 더위를 이겨냈는데, 이를 ‘복달임’ 또는 ‘복놀이’라고 한다.

‘동의보감 서문’에 보면 ‘삼복에는 심한 열이 기를 상하게 한다’ ‘여름 더위에는 기를 보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는 복날에 보양식을 먹었다는 걸 뒷받침해 준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궁중과 양반가에서는 민어를 활용한 찜이나 탕이 최고 요리였다.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 보면 “민어는 맛이 달고 무더운 여름에 먹으면 기운을 북돋운다”라고 기록돼 있다. 복달임에는 팥죽도 먹었다. 1811년 유상필이 지은 ‘동사록’에는 “초복(初伏)에 일행 여러 사람에게 팥죽을먹였다”라고 기록돼 있다.

닭 요리도 있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삼계탕이라는 이름을 쓴 건 100년밖에 되지 않는다. 청동기 시대부터 닭을 기른 것으로 전해지지만 어떤 문헌에도 삼계탕이라는 이름은 기록돼 있지 않다.

문헌에 처음 기록된 것은 닭국·닭백숙으로, 백삼가루를 넣고 끓였다. 인삼은 가공 방식에 따라 수삼(水蔘)과 백삼(白蔘), 홍삼(紅蔘) 등으로 나뉜다. 이중 백삼은 4년 정도 재배한 수삼의 껍질을 벗겨낸 다음 햇볕에 말려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방신영이 쓴 ‘조선요리제법(1917년)’에는 백삼가루를 이용한 닭국 조리법이 담겨있다. ‘닭을 잡아 내장을 빼고 발과 날개 끝과 대가리를 잘라버리고 뱃속에 찹쌀 세 숟가락과 인삼 가루 한 숟가락을 넣고 쏟아지지 않게 잡아맨 후에 물을 열 보시기쯤 붓고 끓인다.’ 그런데 1942년에 발간된 ‘조선요리제법’에서는 닭국을 ‘백숙’이라고 불렀다.

삼계탕의 본래 이름은 ‘계삼탕(雞參湯)’이었다. 주재료가 닭이고 부재료가 인삼이라는 말이다. 1950년대 중반 계삼탕을 파는 식당이 생겨났고 점차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그러다 백삼가루가 아닌 인삼 한 뿌리를 통째로 넣는 조리법이 개발됐다. 냉장고의 보급으로 인삼의

장기보존화가 가능해지면서 말린 인삼을 넣게 된 것이다. 주재료인 닭보다 인삼의 효능 치가 중시돼 자연스레 ‘삼계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국, 일본 복날 음식

중국과 일본은 무더운 복날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중국 풍습을 보면 두복에는 만두, 이복에는 국수, 삼복에는 달걀 전병을 먹었다. 옛 중국인은 복날에 ‘푸몐(伏面, ‘伏’은 삼복의 통칭)’ 즉 복면이라는 국수를 먹었다. 농사일이 고된 중국 전통사회에서 한여름에 밀이 부족해 이 시기에 밀을 이용한 음식을 먹는 것은 아주 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집마다 밀을 이용한 요리를 먹었다고 한다. 일본의 복날은 ‘도요노우시노히(土用の丑の日)’라고 한다. 일본의 대표 여름 보양식은 민물장어인 ‘우나기’다. 사실 일본인에게 우나기는 사시사철 인기 음식일 만큼 연간 소비량이 많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복날에 삼계탕 집에 줄서있는 것처럼 일본인에게도 복날은 우나기 먹는 날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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