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을 이유로 ‘위력에 의한 성범죄 사건’을 덮는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피의자 사망 후에도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해 수사는 진행될 수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추행 논란과 관련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철저한 수사’를 대통령이 촉구했다. 그간 민주당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표방했지만, 정작 여권 인사가 관련되면 태도를 바꿨다.

지난 이영수 할머니가 정의연의 그간 행보에 문제를 제기할 때도 여당은 윤미향 의원을 감싸기에 바빴다. 이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자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했다. 심지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욕을 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이렇듯 여권 인사, 제 식구만 관련되면 ‘가해자 인권보호’가 더 부각되는 이중적 행보는 여권에 대한 실망감만 키우고 있다. 

박 전 시장 사망 후 고소인을 향한 2차 가해는 이미 도를 넘었다. 돈을 받았냐 꽃뱀이냐 등 온갖 비난을 하더니 급기야 ‘이순신-관노’까지 소환해 21세기 성추행을 빗대는 지경이다.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는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고소인은 내부적으로 이 사안을 알리고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를 문제로 인지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비서는 원래 그런 업무를 해야 하는듯한 발언까지 해, 고소인이 말도 꺼내지 못할 상황을 만들었다. 모두가 성인지 감수성이 바닥이었던 것이다. 박원순 전 시장의 사안이 더 심각한 것은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안희정 전 지사 사건을 통해서도 깨달을 시간이 있었고, 당장 자신의 측근에서 일어난 성범죄로도 중단할 기회가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1000만 시민의 손으로 뽑은 서울시장이었던만큼 사망을 이유로 무조건 ‘사건종결’을 말할 것이 아니라, ‘위력에 의한 성범죄’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사건의 진실만큼은 밝혀져야 한다. ‘자살은 또 다른 2차 가해’라는 누군가의 글귀처럼 죽음이 무조건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 이는 지난 4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어렵게 고소를 결심한 피해자에게 또다른 가해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사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수 있는 수많은 여성에게도 암묵적 2차 가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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