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코로나19로 정상적인 등교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고3이 올해 대학입시에서 재수생보다 불리할 것이란 예측이 그동안 많이 나왔다. 그러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 일수가 줄어 고3과 재수생 간 학력 격차가 벌어진 점을 우려해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난이도를 크게 낮출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과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 6월에 재수생, 재학생이 모두 치른 수능 모의평가 채점 결과, 재학생과 재수생의 격차가 다른 해에 비해 뚜렷하게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발표했다.

서울시 교육감의 발언은 교육부 장관 다음으로 교육계에서 가지는 파급력이 크다. 따라서 한마디 한마디를 심사숙고해서 발언해야 한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발언이 한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육감의 위치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감을 비롯 학교 교육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교육감이 기회주의자처럼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다 구설에 오르는 일이 너무 잦다. 교육감은 대학입시에 “감 놔라 배 놔라”할 직위가 아니다. 코로나19로 도움이 필요한 학교나 교사, 학생들이 있는 현장을 찾는 게 더 급한 일이다. 교육은 뒷전이고 정치를 하니 학교 현장의 어려움은 오로지 교장, 교사의 몫이다. 코로나19로 제대로 등교하지 못해 고3이 불리한 상황이 될 거 같으면 온라인 수업, 등교 수업이 좀 더 내실 있게 진행되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찾아 지원하는 게 제대로 된 역할이다. 

재수생이나 고3이나 대부분 작년 수능 난이도에 맞춰 꾸준히 공부하며 수능을 대비해왔다. 오히려 고3 상위권 학생들은 코로나19로 공부에 몰입할 시간적 여유가 많아 수준이 향상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수능 역사를 볼 때 불수능은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유리했다. 반면 물수능은 상위권 학생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시험을 4개월 앞두고 갑자기 수능 난이도를 낮추면 비슷한 등급이 폭증해 한두 문제만 실수로 틀려도 입시에 실패할 수 있다. 수능은 1년간의 노력이 아닌 3년간의 노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3년간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난이도의 문제를 내야 부작용이 적다. 난이도를 낮춰 수능 변별력이 떨어지면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 대학에서는 수능 이외의 요소인 학종에 가점을 두어 선발할 수밖에 없다. 결국, 부모 찬스를 써 스펙을 쌓아 온 금수저에 유리한 전형이 된다. 인천국제공항 사태로 그동안 성실하게 스펙을 쌓으면 정규직 시험을 준비해온 대다수의 성실한 젊은이들이 좌절했다. 마찬가지로 수능 난이도를 낮추면 코로나19에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좌절한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수능 난이도 하향 발언은 수능을 위해 노력한 자와 노력하지 않은 자의 차이가 그리 클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어느 국회의원이 말한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다”라는 발언과 맥락이 비슷하다.

공부 조금 더 잘했다고 공부 안 한 학생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공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학창시절 별다른 노력도 없었는데 운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회보다는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 정규직이 되면 연봉을 2배 받는 사회가 제대로 정의가 구현된 민주사회다. 학생이 사회에 나와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공정하게 판별하는 기준은 학창시절에 얼마나 주어진 학습량을 성실하게 수행했느냐를 통해 예측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법고시로 판검사를 뽑을 이유가 없고 공무원 시험도 의미가 없다. 아이들이 학창시절에 공부에 파묻혀 사는 건 불행한 게 아니다. 미래에 행복하게 살기 위한 단련의 과정이다. 교육의 경쟁력을 향상해 국제화된 세계 시장에서 이겨나갈 인재를 길러야 한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힘은 교육이다.

그동안 서울시 교육감이 추진해 온 특목고를 없애 하향평준화를 시키자는 정책과 수능 난이도를 낮춰 공부를 안 하는 학교로 만들자는 발언이 일맥상통한다. 자사고, 외고, 특목고, 영재고를 죽이는 정책으로 하천에 사는 가재, 개구리, 붕어가 하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계층사다리를 제거해선 안 된다. 학교 수업을 열심히 받고 노력하면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정시를 확대한 입시제도를 만들어야 공교육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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