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지난 2018년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투’가 좀 가라앉은 듯했으나 또다시 2년만에 성추행을 폭로하는 증언이 이어지며 국민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제2의 이윤택, 제3의 안희정이 정치권, 문화권에서 숨어 지내며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흘러 나왔지만 그 인물이 故박원순 서울시장이라는 점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측은 “박 시장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4년간 지속됐다”며 “박 시장의 성추행이 안희정 지사와 오거돈 시장의 ‘미투’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았다”고 밝혀 평소 ‘미투’ 운동 지지 발언을 했고 친여성 행보를 보인 이중적 이미지에 국민은 큰 상처를 받은 모습이다. 

여기에 과거 검찰·연극계 등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선 “응원한다”던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박 시장에 대한 미투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지난 2018년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폭로했을 때 ‘현직 여검사의 용기 있는 미투를 응원한다’는 입장을 냈지만 이번 미투 사건에 대해선 너무나 조용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여성가족부의 ‘침묵’도 주목되고 있다.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여가부가 나설 여지가 적다는 설명을 늘어놓고 있어 도대체 여성의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피해자를 보호하고 상담해야 할 여성가족부의 ‘나몰라라’ 반응에 많은 여성 단체들이 실망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도 극단적 선택을 한 박 시장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박 시장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권력형 성폭력 범죄로 의심되는 피해자의 주장이 존재하는 만큼 박 시장을 지나치게 영웅시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박원순 사건이 지금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사건의 공통점은 바로 부적절한 권력과 지위다. 거기에 특권남용이라는 수식어가 들러붙는다. ‘박원순 미투’는 정치권에 이어 또다시 문화계, 교육계 등 사회 전반으로 도화선에 불이 붙을 수 있다.

지금도 제2의 박원순이 될 것이라고 숨어서 떨고 있는 성추행 피의자들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어떤 형태의 조직이든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해자가 되면, 성추행을 관행이라 주장하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조작하고 공격성까지 띄는 피의자들도 볼 수 있다.

여성들은 과거와 달리, 미투 운동을 통해 지금껏 잊어왔던 혹은 참아왔던 사실을 고발하며 용기 내고 있다. 박원순 미투 사건을 통해 정치계는 반성해야 한다.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의 전범을 몸소 실천하셨다”고 페이스북에 올리며 옹호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상식 이하의 표현은 많은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같은 편이라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일상과 안전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의 자살로 얼마나 변화될지, 갑질의 양태가 근절될지는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위아래가 엄격한 조직사회나 도제식 만행이 이뤄지는 갑을 관계에서 성추행은 두드러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용기 있게 미투에 나섰던 피해 여성을 사회는 보호해야 한다. 사법부에도 성범죄를 전담으로 다루는 재판부를 운용하고 여성가족부도 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통해 침묵하지 말고 여성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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