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오늘로써 딱 2년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시점이다. 그러나 5년 단임제의 대통령제하에서는 임기 중반이면 사실상 정권에 대한 평가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조만간 차기 대선을 향한 ‘대선정국’이 가시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즈음 여론은 ‘정권재창출’에 힘을 실을지, 아니면 ‘정권교체론’에 힘을 실을지에 대한 큰 가닥도 잡힌다. 그 간의 국정운영이 형편없었다면 ‘레임덕’으로 가는 것도 대체로 이즈음이다.

그래서 임기 중반쯤의 대통령 지지율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야당(통합당) 지지율은 더 중요하다. 대안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차기 대선에서 희망을 걸 수 있을지의 여부가 이즈음부터 형성되기 때문이다. 여론은 역동적이긴 하지만 냉정하다. 야당을 향한 기대치가 없다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그것은 야당의 것이 아니다. 설사 야당 지지율이 오르더라도 그것은 ‘버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통합당이 지금 이런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중반기에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들춰본다. 국민의 시선이 지금 어떨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았던 사실상의 ‘혁명정부’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요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 하겠습니다”는 말도 했다. 하나만 더 짚어보자. 문 대통령을 상징하는 워딩도 이때 나왔다. 문 대통령은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고 역설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 중반, 지금 민심의 최대 이슈는 추미애와 윤석열의 싸움이 아니다. 그리고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했지만, 국민의 관심은 거기에도 별로 높지 않다. 미국에 대한 배신감을 경험한 우리 국민이 비건의 언행에 쉬 신뢰를 주기엔 역부족처럼 보인다. 게다가 민생현안과도 거리가 멀다. 지금 국민은, 아니 거의 모든 국민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이슈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아파트 값’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것이 무려 20여 차례 이상이다. 그런데 정부 대책이 나올 때마다 거꾸로 아파트 값이 뛰었다는 점이다. 세상 어느 나라에 이런 경우가 있는지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서울 지역엔 일 년에 평균 일억원씩 올랐다는 통계는 말 그대로 통계일 뿐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아파트 값 상승은 더하다. 한마디로 ‘폭등’이다. 이 쯤 되면 아파트 값 폭등은 ‘정부’가 주범이다. 정책 실패가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을 부동산 투기로 내 몬 ‘나쁜 정부’의 범죄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다수의 여권 인사들이 강남 아파트를 비롯해 다주택자라는 사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에 결정타가 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그러니 3년간 20여차례 이상의 부동산 정책이 나와도 그 때마다 아파트 값이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서울 강남과 대전에 2주택을 보유하며 4년간 23억여원의 시세차익을 봤다는 경실련 발표는 충격이다. 평생 벌기도 힘든 23억원을 단 4년 만에, 그것도 불로소득으로 벌 수 있는 나라라면 그건 이미 나라가 아니다. 특히 그 사람이 6선의 국회의원이고 현직 국회의장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라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이런 정부이다 보니 대부분의 국민은 아파트 값 스트레스로 날밤을 새고 있다. 그 결과 당정청 고위 인사들, 그리고 강남 등 일부 지역만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국민이 ‘루저’가 되고 말았다. 일 년에 평균 일억, 잘만 하면 수억원을 챙길 수 있으니 지방에서도 돈 좀 있으면 너도나도 서울에 아파트를 사댔다. 심지어 30대 청년들도 거액의 부채를 떠안은 채 서울 아파트 매매 대열에 뛰어 들었다.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되도록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은 사실상 무방비에 가까웠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잘 작동되고 있다고 했다. 모르고 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그런 말을 했다면 ‘나쁜 정부’의 상징 격이다.

다시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를 보자. ‘나라다운 나라’, 그러나 지금의 이런 상황이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이라면 주권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라 거대한 ‘도박장’이다. 국민을 투기꾼으로 내 몬, 참으로 나쁜 권력의 배신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주요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언론에 브리핑 하겠다고 했다. 지금 부동산 문제보다 더 주요한 사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언론 브리핑은 없다. 아파트 값 폭등이 주요 사안이 아니라면 달리 할 말이 없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문 대통령의 상징과도 같은 이 말을 그대로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기회는 그들만 평등했고 과정은 그들만 공정했으며 결과도 그들만 정의로웠다. 그들이 아닌 국민, 스스로 ‘루저’가 되고 말았다는 대다수 국민들의 눈빛과 분노를 어떻게 감당해 낼지, 반환점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미래가 참으로 불안하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존재감조차 없는 야당이 있고, 남은 시간도 만회의 타이밍으로는 크게 부족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일 년여 기간,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아니 나라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혁명 정부’에 걸맞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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