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고구려인들에게 ‘용(龍)’은 전쟁의 신 치우(蚩尤)였으면서도 제왕이나 용감한 전사를 상징하고 있다. 용면 와당 가운데 지금 소개하는 유물에서는 분노한 고구려 전사의 얼굴이 감지된다. 이 와당은 다른 와당에 비해 보존상태가 좋으며 마구리를 접합시킨 기와골까지 남아 있는 예다.

고구려시대 용을 그린 장엄도는 고분벽화에 많다. 평양 강서대묘의 청룡, 중국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 우산촌에 있는 오회분 4호묘의 용, 그러나 가장 역동적인 모습은 평양 진파리 벽화의 청룡도가 아닌가 싶다. 이 들 용은 얼굴보다는 몸체까지 하늘을 비상하고 있는데 역동적인 고구려인들의 힘찬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진파리 용의 얼굴을 잘 살피면 바로 와당 속에 눈을 부릅뜬 용면이다. 두 눈은 크게 표현되었으며 입을 크게 벌려 금방이라도 상대를 집어삼킬 듯한 자세다. 고구려 무덤 속의 용은 사신(四神)의 하나로서 청룡이며 동쪽을 지키는 방위의 신이다.

용문와당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7.8
용문와당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7.8

삼국사기에는 용과 관련된 기사를 23건 이상 찾을 수 있다. 용이 황제나 왕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다. 삼국유사 기록에서 용은 호국(護國)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삼국유사 북부여(紀異 第一 北夫餘)전에는 ‘천제가 흘승골성에 내려 왔는데,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왔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진흥왕은 왕성 옆에다 궁전을 짓다 용이 나타나자 절을 지었으며 황룡사라고 명명했다. 문무왕은 죽으면 용이 돼 왜구를 지킬 테니 동해구(東海口)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이 고구려 와당은 이마에 3개의 뿔이 천각(淺刻)으로 표현됐으나 미간이 좁고 사실감이 없어 시대의 하한을 말해주고 있다. 눈썹은 2중으로 밑에도 표현했으며 1조의 선문으로 튀어나오게 했다. 코는 중간이 함몰됐고 들창코로서 큰 편이다. 입은 눈 밑까지 크게 벌려 1조의 화염문을 장식했다. 입가에 송곳니가 있으며 이는 상하 4개씩 모두 여덟 개다. 주연은 소문대이며 모래가 적은 적색이다. 경 14㎝, 두께 4㎝ 기와골(전장) 37.6㎝.

용문와당 옆면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7.8
용문와당 옆면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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