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강혜원 대표 사진.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6.30
독립운동가 강혜원 대표 사진.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6.30

‘신한부인회 결성, 대한여자애국단 초대 단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에 독립운동 자금 후원’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이 국가보훈처·광복회와 공동으로 강혜원을 2020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기 위해 한달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관련 자료 9점을 전시한다.

강혜원은 평남 평양에서 아버지 강익보와 어머니 황마리아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1905년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어머니 황마리아의 의지로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1913년 4월 어머니와 함께 호놀룰루 대한인부인회를 조직한 것을 계기로 강혜원은 부인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같은 해 김성권과 결혼하고 미국의 풍습대로 ‘김혜원’으로 성을 바꾸었다. 남편 김성권은 상점서기 등으로 일하고, 강혜원은 바느질로 생업을 도왔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는 안창호가 다뉴바를 방문, 강혜원과의 만남이 이뤄졌고 이를 계기로 1919년 3월 신한부인회가 결성돼 강혜원이 총무로 선임됐다. 같은 해 8월에는 신한부인회를 비롯해 미주 여성단체를 통합해 대한여자애국단이 결성됐고 강혜원은 초대 총단장으로 선임됐다.

대한여자애국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정 지원을 비롯해 대한인국민회 후원, 한인 구제사업 및 교육 등을 위해 활동을 이어나갔고, 강혜원은 대한여자애국단 총부와 지부의 주요 간부로 헌신하며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 또한 흥사단에 입단해 활동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1982년 5월 31일 별세, 로스앤젤레스에 묻혔으나 2016년 남편 김성권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대전현충원에 안치됐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흥사단 건물 앞에서 남편 김성권 및 흥사단 단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1열 우측 세 번째 강혜원, 2열 우측 두 번째 김성권).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6.30
흥사단 건물 앞에서 남편 김성권 및 흥사단 단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1열 우측 세 번째 강혜원, 2열 우측 두 번째 김성권).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6.30

한편 강혜원을 비롯한 가족 5명은 미주 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주요 인물이다. 강혜원의 어머니 황마리아(1865년~1937년, 2017년 애족장)는 하와이 한인사회 부인운동의 선구자로 대한인부인회를 이끌며 독립운동 의연금 모집을 위해 힘썼다.

남편 김성권(1875년~1960년, 2002년 애족장)은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1904년 미국으로 이민해 농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하와이 한인통합단체인 한인합성협회 조직에 가담했고, 1919년 흥사단에 입단한 이래 1930년대 중반까지 흥사단 이사장 등을 지내며 평생 흥사단에 헌신했다.

큰동생 강영승(1888년~1987년, 2016년 애국장)은 미주 이주한인 중 최초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로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했으며, 강영승의 부인인 강원신(1887년~1977년, 1995년 애족장)은 강혜원과 함께 대한여자애국단 등에서 활동하며 부인운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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