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단 한 명의 관객과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아침평론] “단 한 명의 관객과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비가 오는 날 텔레비전을 잠시 시청하다가 우연히 ‘인간극장’을 보게 됐다.

‘인간극장’은 다큐 미니시리즈 형식으로 전개되는 프로그램으로 그 내용 속 주인공들의 특이한 삶을 다뤄 인기를 끌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프로는 솔의 가수 박인수씨를 소재로 한 ‘봄비 그 후’편이었다. 그 전에 인간극장을 본 적은 있었지만 어느 방송사가 하는지도 몰랐고, 시청하면서 살펴보니 KBS 1TV 제작물 중 100편을 고른 재방영 편을 이번에 보게 된 것이다.  

인간극장 5부작을 보는 동안 박인수씨에 대해 기억이 날 듯 말 듯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고/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로 시작되는 ‘봄비’ 노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 노래 가수가 박인수씨였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해낸 것이다. 봄비는 1970년 5월에 나온 노래로 벌써 50년이 지났고, 또한 가수 박인수씨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1990년대 초에 잠적해 활동을 중단했으니 필자 기억 속에서 긴가민가한 상태로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봄 계절에는 은근히 비가 오는 날이 많다. 회색빛 잔뜩 머금은 하늘에서 보슬비같이, 또 휘날리는 비가 내릴 때마다 나는 이은하 가수의 ‘봄비’를 몇 번 흥얼거려봤지만 박인수씨의 노래는 불러본 적 없다. 박인수 가수가 부른 ‘봄비’를 기억하거나 좋아하면서도 말이다. 박인수씨의 사연이 나온 ‘봄비 이후’편을 보고서 박인수 자료를 다시 찾아보았고 그가 활동하던 전성기 때 노래들을 여러 편 들었다. ‘봄비’를 비롯해 ‘겨울 소나타’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보셨나요’ ‘기다리겠소’ ‘뭐라고 한 마디 해야 할텐데’와 또 해뜨는 집(House of rising Sun) 등 그가 부른 명곡들을 단 시간에 듣고서야 다시금 그를 옛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던 것이다.

음악계에서는 박인수씨를 두고 한국 최고의 솔(soul) 가수라 평한다. 솔은 흑인의 교회음악이나 가스펠(복음성가) 송을 바탕으로 한 재즈의 일종으로 솔에 심취했던 그가 국내에서 솔을 처음 불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의 가수 박인수는 솔이 흑인들의 영혼 속에 깊이 빠져 있듯, 박인수의 내면과 외연에서 솔풀(soul pull)이 묻어나는 건 그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1947년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난 박인수씨는 1.4후퇴 때 한국으로 내려와서는 부모와 헤어지게 되고 어린 시절 미군부대에서 일하게 된 인연으로 14살 때 미국의 켄터기주 양부모에게 입양된다. 켄터키 중학교와 베어모어 고등학교 졸업 후 그곳에서 노래공부하면서 흑인들에게 인기 있는 솔에 관심이 많은 채로 고국이 그리워 21세 때인 196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창한 영어로 미8군 무대서 노래했던 그가 신중현에게 발탁돼 총 11장 앨범을 내게 됐다. 그 대표작이 1970년 발표된 ‘봄비’다.

그 이후에 ‘봄비’ 노래는 가수 김추자, 장사익, 인순이, 체리보이, 홍서범, 하현우 등이 리메이크해 부르면서 명곡이 됐던바, 이 노래 애청자들은 단연 최고의 가수로 박인수를 꼽고 있으니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맑은 영혼의 소리로 듣는 이로 하여금 영혼 깊숙이에 파고드는 노래라 극찬했다. 혹자는 대한민국에서 노래 한곡을 선택하라 한다면 단연 박인수의 ‘봄비’를 꼽는다고 할 정도로 이 노래는 유명세를 탔다. 

어제 재방송한 인간극장은 2012년 4월에 방송된 ‘박인수의 봄비’편을 보고 많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보여 2개월 뒤인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5부작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 내용이 다시 ‘인간극장 100편산(選)에 들어 재방영된 것이다. 그 내용은 4월 ‘인간극장’에서 박인수씨가 30여년 만에 아내 곽복화씨, 아들 진서씨와 재회하고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2013년 6월 서울 상수동 아트홀에서 ‘박인수 콘서트’를 열고 가족과 옛 동료, 후원자들이 다 감격을 맛보았다는 내용으로, 가수 박인수는 전성기 때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단기간기억상실증 병세를 겪는 등 역경을 이겨내고서 ‘봄비’를 영혼의 울림으로 전했던 것이다.  

‘때로는 화려한 무대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때로는 거리에서 지나는 사람들의 냉소를 받으며, 더는 예전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 볼 수 없는 건가요?’ “단 한 명의 관객과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내 영혼을 노래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저는 가수입니다” 박인수씨가 인간극장 다큐 드라마를 찍을 때 했다는 프로적인 말이 봄비 노래만큼이나 가슴을 파고든다. 

전성기 때 노래무대에서 3단 고음을 구사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던 ‘한국 최초의 솔 가수’ 박인수씨가 가족과 재회하고 난 뒤 최근 소식이 알려진 바 없지만 그의 쾌유를 기원한다. 인간극장 ‘봄비 이후’를 보고나서 뭐라 해도 소시민의 최고 행복은 가족 건강과 화목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으니, 누군들 코로나 19가 몰고 온 지루한 환난 속에서는 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