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살다보면 행동이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아는 사람 중에 채식주의자가 있다.

함께 식사 한 번 하는 것이 힘들다. 그 사람을 모를 때에는 채식을 한다고 하면 고기만 안 먹는 줄 알았다. 육류가 들어가는 우유는 물론이고 치즈, 크림도 안 먹는다.

그러니 요즈음에 채식주의자는 정말 먹을 것이 없게 느껴진다. 심지어 김치만두에도 고기 다진 것이 들어가고 국수에도 멸치와 다시마 끓인 물이 들어가니까 다 못 먹는다. 라떼 종류를 먹더라도 꼭 우유 대신 두유나 아몬드 브리즈 같은 것으로 대체해서 마신다. 그렇게까지 꼭 해야 되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융통성 있게 뭔가 섞여 있을 때는 먹어도 된다든지 하는 예외를 두면 주변 사람들도 덜 힘들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한 번 결심을 했다면 바꾸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채식주의자처럼 조목조목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을 미리 정해놓고 예외 없이 지켜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결정 피로감(decision fatigue)라는 용어가 있다.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 피로감을 상당히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의사결정 피로감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는데 이스라엘의 어느 교도소에 수감된 남자 죄수 네 명이 가석방을 허락해 달라는 청원서를 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오전 8시 50분 진술, 아랍인, 사기죄로 30개월 형 선고
2. 오후 1시 27분 진술, 유대인, 신체 상해죄로 16개월 형 선고
3. 오후 3시 10분 진술, 유대인, 신체 상해죄로 16개월 형 선고
4. 오후 4시 35분 진술, 아랍인, 사기죄로 30개월 형 선고

결과는 죄수1과 2는 가석방 청원이 받아들여졌고, 죄수3과 4는 가석방이 기각됐다. 전문가들은 1은 아침 일찍, 2는 점심식사 후 바로여서 의사결정 피로감이 낮아 받아들여졌고, 의사결정 피로감이 높아졌을 시간대인 3과 4는 기각됐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 법원들의 판결을 수백 건 연구한 결과 판사들이 용기 있는 판결을 내릴 확률은 65%에서 10%까지 점차 떨어지며, 휴식이나 식사 후에는 다시 65%까지 상승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정부지원 프로젝트에 응모한 적이 있는데 지인인 한과 사장님은 첫 번째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우리 연구소는 오전 마지막에 했다. 결과는 예상한대로 한과 사장님은 됐고 연구소는 안 됐다. 이렇듯 의사결정 피로감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기왕이면 피로감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외 없애기’이다.

디저트를 안 먹겠다고 하고 상황마다 끊임없이 다시 고민하면 안 된다. 차라리 무조건 안 먹겠다는 결심이 의사결정 피로감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사소한 결정과 중요한 결정을 끊임없이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인생에서 사소한 결정으로 인한 의사결정 피로감을 줄였을 때 중요한 결정을 잘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됐을 때 행복감도 좀 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어 삶의 질 또한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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