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대작(代作)' 사건에 대한 상고심 공개변론이 열린 5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가수 조영남씨가 법정에 앉아 있다. (출처: 뉴시스) 2020.05.28.
'그림 대작(代作)' 사건에 대한 상고심 공개변론이 열린 5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가수 조영남씨가 법정에 앉아 있다. (출처: 뉴시스) 2020.05.28.

“대작화가 썼다” 사기혐의 기소

1심, 사기죄 맞는다며 집유 2년

2심, 판결 뒤집고 무죄 선고

대법, 무죄 판결한 원심 확정

“작품 평가 전문가 의견 존중”

 

진중권 저서 ‘미학스캔들’ 펴내

“현대미술 몰이해서 나온 소극”

“‘친작’ 시기, 인상주의 시대뿐”

‘조수 활용’ 문제없다고 강조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세기의 ‘미학스캔들’이 끝났다. 그림을 대작(代作)했다는 의혹으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75)씨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씨 상고심에서 무죄를 판결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함께 재판을 받은 조씨의 매니저 장모씨도 무죄가 선고됐다.

조씨는 지난 2016년 화가 송모씨 등에게 일종의 하청을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한 뒤 해당 그림을 약간 덧칠한 뒤 자신이 직접 그린 것처럼 피해자들에게 판매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이를 통해 17명에게 21점을 팔아 1억 8000여만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파악됐다.

매니저 장씨는 조씨의 작품 제작과 판매 등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씨 “미술계 관행” 해명

한 무명작가가 조씨의 그림을 대신 그렸다며 제보한 2016년 당시 검찰은 조씨 소속의 갤러리 등을 압수수색하며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조씨는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송씨 등이 자신의 지시대로 밑그림 등을 그리면, 마무리는 조씨가 했다고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미술계에서 큰 논란이 됐다.

이때 조씨에게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적극적으로 검찰 수사가 부적절하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였다. 진 교수는 “핵심은 콘셉트”라며 “그것을 제공한 사람이 조영남이라면 별 문제 없다”고 말했다.

◆1심과 2심의 다른 판단

2017년 열린 1심은 조씨에게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송씨 등은 조씨의 창작활동을 돕는 데 그치는 조수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일부 피해자들은 조씨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점을 들어 사기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작품의 주요 콘셉트와 소재는 조씨가 결정했고, 송씨 등은 의뢰에 따라 조씨의 기존 작품을 그대로 그렸다”며 “보조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하는 이상, 그 방식이 적합한지의 여부나 미술계의 관행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법률적 판단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지난해 11월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7

◆진중권 “한국미술 관념 과거에”

지난해 말엔 진 전 교수가 다시 이 논란에 등판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미학 스캔들- 누구의 그림일까’를 통해 “이 사건은 한국 미술계의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 빚어낸 소극”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쏟아진 주장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출판 당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 전 교수는 “대중들은 화가가 직접 모든 작품을 그린 시기는 인상주의 시대로 아주 짧은 기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한국 사회에 통용되는 예술의 관념이 19~20세기 초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상고되면서 대법원은 지난달 28일 공개변론도 열었다.

검찰은 송씨가 그림의 기여한 정도를 볼 때 ‘대작 작가’가 맞고, 구매자들의 구매 이유는 유명 연예인 조씨가 직접 그렸다는 기대 때문이라면서 사기죄를 주장했다.

반면 조씨 측은 작품의 본질인 창작요소는 조씨의 것이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특성과 달리 검찰이 기소를 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대법 “가치평가 전문가 평 존중”

심리 끝에 대법원은 조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미술작품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지 않은 한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저작권 등 법조문이 존재하는 영역이 아닌 작품의 가치 평가는 법원이 개입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또 구매자들이 조씨의 작품이 조씨가 직접 그린 ‘친작’으로 착오하고 구매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작품의 저작권이 조씨가 아닌 송씨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조씨의 소유의 작품이 아니라는 검찰의 상고 이유에 대해선 “검사는 이 사건이 사기죄에서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공소 제기를 했는데 미술 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문제 된 것은 아니다”라며 ‘불고불리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불고불리(不告不理) 원칙’이란 공소사실 외의 문제에 대해선 법정에서 심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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