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현진 기자] 6.25전쟁 발발 70년을 맞아 본지가 당시 미국 종군기자들이 촬영한 기록사진을 공개한다.
이는 6.25전쟁 당시 파견된 7명의 종군기자들이 촬영한 것이며, 정성길 명예박물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기록사진들이다.
앞서 본지가 2015년부터 전국순회전시를 통해 공개한 사진도 있으나 공개하지 않은 사진들도 포함됐다. 전쟁의 순간의 모습과 피란민, 전쟁고아의 모습까지 전쟁의 참상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이다. 또 비무당지대에서 최초 칼라로 촬영한 사진까지 포함됐다.
사진 설명들은 당시 종군기자들이 촬영 후 기록해놓은 설명을 그대로 옮겼다. 종군기자들의 관점에서 보는 6.25 사진들인 셈이다. 종군기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전쟁이 왜 이땅에서 사라져야 하는지를 느끼게 한다.
남쪽으로 피란 가는 행렬(1951년 4월 25일). 여성, 아이들, 그리고 노인으로 구성된 자들이 어느 정도 집결해 남쪽으로 가는 육로로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재산으로 보이는 가축 한 마리가 있는데, 특혜를 받아 짐을 지지 않고 걷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피난민 소지품 검사(1950년 8월). 미국 군인들은 피란민들이 다니는 모든 주요 도로 지점을 막고 철저하게 검사를 했다. 실제로 이 한국인 여성은 등에 아기가 있지만 그녀의 소지품 검사를 면제해 주지 않았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힘겨운 고통에 지친 한국어머니. 고향을 등지고 지친 피난길에서 아들과 함께 먹지도 못해 절규하고 있다. 힘겨운 고통으로 눈물도 마르고 침까지 흘리고 있다. 목놓아 통곡하는 이 장면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엄마 잃은 피란민 어린이들(1950년 10월 21일, 26일 두 차례 AP보도). 한국전쟁의 최악의 비극을 담은 이 사진은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서 배수로를 따라 난 길 위에 언니는 어머니의 몸 옆에 웅크리고 있고,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엄마를 애타게 부르고 있으나 이미 차가운 시신이 되어 아이를 돌 볼 수가 없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어머니 발치에 쓰러진 소녀. 먼 피란길을 오면서 먹지 못해 쓰러진 딸을 어머니가 일으켜 세우고 있으나 지친 딸은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있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딸 이름을 계속 부르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어린 아이가 보는 전쟁(1950년 12월 11일). 이 작은 한국인 아이는 중국 공산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서 대동강을 건너 피해온 피란민 중 하나였다. 엄마 버선을 손에 끼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추위와 굶주림에 울고 있는 피란민 아이(1951년 1월 16일). 제발 좀 도와주세요! 이 어린 소녀는 얼마나 이동하였을까? 누더기 옷을 입고 추위와 굶주림에 부산의 부두 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한 한국인 피란민 아이. 끊임없는 피란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평화를 잃은 아이(1951년 6월 25일 오후 4시 26분). 그에게 평화란 없다. 그의 인생의 전부를, 이 작은 한국인 아이는 도망갔다. 그의 가족과 반도를 밀려오는 전쟁으로 인해 이쪽저쪽으로 피란을 다녔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굶주림에 처한 아이(1951년 6월 25일 AP보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매년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굶주림에 처해 있다. 아이는 앙상한 뼈만 남아 숨조차 고르지 못하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중(1951년 10월 11일).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 중이며, 초기지도로 북쪽과 남쪽의 경계를 볼 수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북한 남일 장군에게 질문하는 기자(1951년 8월 7일). 한국 개성, 미국 특파원인 로버트 터크맨이 휴전된 도시에서 19번째 휴전회담 후 회의 장소를 떠나는 남일 장군에게 통역원을 통해 합의점에 다다를 수 있는지 물었지만, 지금은 답을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것은 평화회담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하는 이야기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
연합군과 북한조사단(1951년). 좌측 연합군과 우측 북한군이 나란히 앉아 군사분계선 경계설정 확인을 하고 있다. 지금의 군사 분계선은 이런 식으로 설정된 것이다. 인민군도 앞에서 촬영하고 있다. 동쪽 전선에서는 치열한 고지전이 한창이지만, 이곳에서는 총 대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