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찾은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모전리 매몰지 뒷편 상추재배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물에 역한 냄새가 난다는 제보가 입수돼 본지 기자가 사실 확인을 위해 물을 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정부 진실 감추나 지하수 오염 사태‘의문투성이’
사체 이전 후에도 피해 여전… 애꿎은 주민만 속앓이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직접 보세요.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문제의 구제역 매몰지로부터 불과 5m 건너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재배하는 농장주 이종훈(30) 씨는 그간의 시달림으로 무척이나 답답했던지 보란 듯이 지하수 펌프를 콸콸 틀어 보였다. 기자가 지하수 펌프로 가까이 갔을 때는 벌써 비릿한 악취가 코끝으로 전해져 손으로 코를 막아선 뒤였다.

“내 눈으로 동물성 기름이 둥둥 뜨는 것도 봤고 물이 뿌예지더니 거품이 생기는 것도 봤어요. 그런데 정부는 구제역 침출수로 인한 오염이 아니라고 하니 답답합니다.”

이 씨는 정부에서 지난 1월 18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모전리 일대에 9016마리의 돼지를 묻고 열흘도 채 안 돼 지하수에서 냄새가 나고 기름이 뜨는 등의 오염 피해를 겪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현재 하우스 주변에 설치된 4개 펌프 중 냄새가 안 나는 1개만 사용하고 있다”며“오는 여름에는 물을 더 많이 써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가슴을 쳤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29일은 벌써 문제가 된 매몰지를 영농조합 축산단지 내 축분처리장으로 옮긴 뒤였다. 하지만 매몰지를 이전한 이후에도 정부는“구제역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은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 지하수가 오염됐다는 보도가 이어 진후 이천시는 매몰지를 급히 인근 축산처리장으로 옮겼다. 이전 매몰지에서는 남은 침출수를 빼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편 비닐하우스 재배농가는 오염된 지하수 물을 빼내기 위해 수시로 하천에 물을 방류했다. 농가가 흘린 물은 배수로를 타고 매몰지 주변으로 또 다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피해는 있는데 원인 없는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침출수인지 동물폐사로 인한 것인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며“침출수로 인한 오염은 없다. 더 검사해보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침출수로 인한 오염 사실을 은폐· 축소하려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매몰한 모전리 일대 한 주민은“침출수 문제가 있기 전에 벌서 수질검사를 두 번이나 했다. 오염이 없다고 말해오던 정부가 3월에 여론이 불거지니까 매몰지를 황급히 옮기는 모습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달 27일 현역 국회의원이 입수한 자료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이러한 의혹은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환경부가 지난 2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백사면 모전리 매몰지 주변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하수 정밀검사 결과를 입수해 발표했다.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모전리 인근 하우스 1에서는 3.817mg/L, 하우스 2에서는 1.120mg/L, 하우스 3에서는 0.250mg/L, 가정집 1에서는 0.597mg/L 분량의 가축사체유래물질이 측정됐다.

특히 이 수치는 매몰지와 가까울수록 많은 양이 검출됐는데 연구원은 이를 미뤄 침출수로 인한 오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지난달 29일 환경부는 긴급브리핑을 갖고 유 의원이 밝힌 자료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사용한 측정 방식은 ‘간이검증법’”이라며 “이 방법으로는 지하수 오염 원인이 침출수인지, 축산 폐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원자력연구원은 “환경부의 기존 관리 지침으로는 오염원은 침출수 여부를 판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어 원자력연구원은 “(우리는) 침출수 여부를 단기간에 확인할 수 있도록 가축사체유래물질과 총 유기탄소 기준 등을 근거해 검사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현재 정부는 암모니아성질소, 질산성질소, 염소이온, 대장균군 등 4가지 방법만으로 오염 여부를 측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원자력연구원은 13가지 항목을 측정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자신들이 검사를 의뢰한 업체의 측정방식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환경공학과 교수는“아무리 원자력연구원이 구제역 침출수 측정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환경부가 왜 원자력 공학을 연구하는 기관에 검사를 의뢰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이를 알고도 검사를 맡겼다면 측정 방식도 내부에서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침출수 유출 가능성을 제시한 결과를 믿지 못하는 건 더욱 의문”이라고 전했다.

다른 환경공학 전문가도“이전까지 냄새가 나지 않던 마을 지하수에 매몰 후부터 냄새가 났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구제역 침출수 때문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원자력연구원의 발표를 미리 알고도 발표하지 않은 것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 중 하나다.

환경부가 의뢰를 맡겨 검사 결과를 받은 시점은 지난 2월 26일. 유 의원이 사실을 공개한 지난달 27일로부터 무려 1달여나 차이가 났다.

이와 같은 논란은 기존 정부의 지하수 측정 방식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어 보다 분명한 점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 의원은“매몰 지침에 따른 양호한 매몰지에서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이 밝혀진 이상 정부의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가축사체유래물질분석 등과 같이 보다 정밀한 방식으로 전체 매몰지를 검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국 12개 시도 81개 시·군·구에서 가축 매몰. 살처분 농가수 6250곳. 매몰 가축 347만 9513마리. 구제역 방역과 매몰 보상에 든 비용 3조 원. 역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로 오명을 남긴 2010년 안동발(發) 구제역이 지난 120여 일간 남긴 기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달 구제역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하고 구제역으로 인해 긴급 설치된 정부기구인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해산할 뜻을 전했다. 중대본은 “구제역 매몰지 정비보완 공사가 차질없이 완료돼 활동을 마무리 한다”고 지난달 31일 밝혀 사실상 구제역은 종식 선언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구제역 매몰로 인한 2차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구제역 재앙은 이제부터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지난달 27일은 경기도 이천에서 구제역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된 데 이어 환경부가 매몰지 주변 관정 3000여 곳의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무려 143곳에서 오염이 확인됐다.

무리하게 살처분을 진행하고, 하천과 밭 등 매몰이 금지된 곳에 매립을 해 놓은 상황. 환경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토양·수질 등의 환경 피해는 물론 각종 질병, 식수원·먹을거리 오염 등의 피해가 직접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천지일보는 이달부터 <구제역 매몰 그 후>라는 특별 기획을 통해 매몰 이후의 상황을 점검·진단하고 보완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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