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왼쪽)과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오른쪽)이 보물 제2066호와 2067호로 각각 지정됐다. (제공: 문호재청)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왼쪽)과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오른쪽)이 보물 제2066호와 2067호로 각각 지정됐다. (제공: 문호재청)

높이2m‘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학술‧예술 가치 높게 평가… 역사성도 인정
국적 논란 ‘백자 동화매국문병’ 국보 해제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조각승 현진(玄眞)스님의 작품인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보물 제2066호와 보물 제2067호로 각각 지정됐다.

현진은 조선 17세기 불교조각 조성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소실된 불상 조성을 주도했고, 1622년 광해군비 유씨가 발원한 자수사(慈壽寺)와 인수사(仁壽寺)의 11존(尊) 불상 제작을 지휘하는 등 왕실과 전국을 무대로 활동한 뛰어난 조각가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진스님이 제작한 불상조각 중 현재까지 연대가 가장 앞서는 작품으로 알려진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長城 白羊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은 높이가 약 208cm에 달하는 대형 불상으로, 1607년(선조 40년) 현진스님이 주도하고 휴일(休逸), 문습(文習)이 함께 참여해 완성한 불상이다.

그간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불좌상’(1612년)이 가장 이른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조사결과 ‘장성 백양사 목조아마타여래좌상’의 제작이 이보다 5년 앞선 사실이 확인됐다.

불상의 대좌 밑 묵서(墨書, 먹으로 쓴 글)에 따르면 백양사 불상은 왕실의 선조들인 선왕(先王)과 선후(先后)의 명복을 빌고 성불(成佛)을 기원하며 만든 것으로, 1607년이라는 제작시기로 미뤄 보아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등 전쟁이 끝나고 몇 해가 지나지 않은 1610년 전후로 이루어진 불교 복구 과정 중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장대한 규모에 긴 허리, 원만한 얼굴과 당당한 어깨, 신체의 굴곡에 따라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 주름, 안정된 자태 등에서 초창기 작품임에도 그의 뛰어난 조각 실력과 더불어 17세기 불교조각의 새로운 경향을 선도한 시대적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자연스런 신체표현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로는 목조(木造)와 소조(塑造) 기법을 조합해 만든 제작 방식을 주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목조불상을 만들 때는 나무를 쪼아 전체적인 형체를 만든 후 좀 더 입체적이거나 현실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 부분적으로 진흙 등을 사용한 소조 기법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백양사 불상 역시 주된 재질은 목조지만 진흙으로 보강한 사실이 과학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현진스님의 조선 후기 대표적 작품 중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된 불상이자 그의 활동 지역과 작품 세계, 제작 기법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예술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또한 1741년(영조 17년)과 1755년(영조 31년)에 작성된 중수발원문(重修發願文)을 통해 개금(改金,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과 중수한 내력, 참여 화승(畵僧)들의 명단과 역할을 알 수 있어 학술적 의미 역시 크다. 이러한 이유로 불상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대좌(臺座)와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번에 같이 지정된 보물 제2067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尙州 南長寺 觀音禪院 木造觀音菩薩坐像)’은 조선 전기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남장사 내 부속사찰인 관음선원에 봉안(奉安)돼 있다. 이 불상 뒤에는 보물 제923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尙州 南長寺 木造阿彌陀如來說法像)’이 놓여 있어 가치와 화려함을 더한다.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의 경우 조성발원문(造成發願文) 등 관련 기록이 부족해 정확한 제작 시기는 확정할 수 없으나 귀족풍의 단정한 얼굴과 어깨와 배에 멋스럽게 잡힌 옷 주름, 팔꿈치에 표현된 ‘ῼ’형 주름, 무릎 앞에 펼쳐진 부채꼴 주름 등 15세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15세기 불상이 지극히 드문 현실을 고려하면, 남장사 관음보살좌상은 이 시기 불교조각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아울러 관련 기록을 통해 1819년 인근 천주산(天柱山) 상련암(想蓮庵)에서 남장사 관음선원으로 이전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위와 개금과 중수 등 보수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불상의 역사성 또한 인정된다.

백자 동화매국문 병(白磁 銅畵梅菊文 甁). (제공: 문화재청)
백자 동화매국문 병(白磁 銅畵梅菊文 甁). (제공: 문화재청)

한편 국보 제168호 ‘백자 동화매국문 병(白磁 銅畵梅菊文 甁)’은 가치 재검토를 거쳐 국보에서 해제됐다.

문화재청은 해제 이유로 ▲출토지나 유래가 우리나라와 연관성이 불분명함 ▲같은 종류의 도자기가 중국에 상당수 남아 있어 희소성이 떨어짐 ▲작품의 수준 역시 우리나라 도자사에 영향을 끼쳤을 만큼 뛰어나다고 보기 어려움 등을 들어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