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로봇/인지시스템연구부 공학박사

일본 북동부에서 일어난 규모 9.0의 대지진과 해일, 또 그로 인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수소 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로 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공포에 떨면서 사고의 수습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원자로 폭발이란 최악의 재해를 막기 위해 냉각용 해수를 퍼 나르는 헬리콥터와 방사능 피폭을 감수하며 악전고투하는 원전결사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로봇이 왜 등장하지 않을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기술적으로 보면 현재의 기술로 로봇이 후쿠시마 원전의 손상된 원자로 내에서 복구 작업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로봇을 투입할 때 가장 먼저 닥치는 문제는 로봇이 파손된 원자로 내의 험난한 지형과 장애물을 뚫고 이동하는 일이다. 원자로 내에서 로봇이 맞닥뜨리게 될 장애물들은 사람이라면 쉽게 극복할 수 있겠지만 로봇이 하기는 어려운 것들이 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꽉 닫힌 문을 열어 통과하거나 뒤얽혀진 철제 기둥과 붕괴된 구조물들이 널려 있는 공간을 지나기 위한 로봇 메커니즘은 아직도 로봇 연구자들에게 난제로 취급되고 있다.

두 번째로 닥치는 문제는 손상된 원자로 내에서의 통신과 전자장치 문제이다. 로봇의 이동이나 작업은 대체로 무선통신에 의해 원격 조정되는데 원자로는 무선통신에 장애를 주는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나 금속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로봇의 조정 자체가 어려워 질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방사능에 노출된 환경에서는 방사능이 반도체 장치를 손상시키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없이 설계된 로봇은 센서나 전자회로의 오작동으로 사용이 불가능하다.

로봇의 이동과 통신 및 방사능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로봇이 원하는 작업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면 난감해진다. 원자로 복구를 위해 로봇에게 주어지는 작업이란 밸브를 여닫거나 펌프를 가동시키고 냉각수를 나르는 호스를 다루는 등 사람의 손과 팔이 같이 움직여야 가능한 일들인데, 험지의 이동이 가능하며 능숙하고 힘 있는 손과 팔이 부착된 로봇을 만드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기술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1999년 토카이무라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사고를 계기로 밸브를 여닫을 수 있는 양팔 구조의 원전용 로봇 <라봇>과 7가지 원전사고 대응작업이 가능한 로봇 <스완>이 일본 원자력에너지청의 주도로 개발된 바 있다. 이 로봇들은 원격조정으로 탱크처럼 험지를 이동하며 방사능 유출 환경 하에서도 작업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으나, 2001년 시제품 발표에 그치고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이유는 로봇의 가격이 너무 비싸고 발전소 소유주들이 일어날 확률도 거의 없고 일어나더라도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원전 사고에 대비해 로봇을 사둘 필요성을 못 느낀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일본은 전쟁터의 험지에서 이미 효용성이 입증된 미국 아이로봇사의 군사용 로봇 <팩봇>과 <워리어>를 원자력 재해현장에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정부나 기업 할 것 없이 팔릴 수 있는 기술만을 강조하여 예상치 못한 국가 인프라의 재난에 대비한 기술 실용화가 실종된 느낌이다. 이번 일본 원전 사고에서만 봐도 사기업인 지역 전력회사의 손익 계산이 늑장 대응을 불러 사고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고 원전용 로봇의 기술개발과 실용화 의지도 무색하게 만든 면이 있다. 원전과 같은 국가 인프라에 대해서는 예기치 못한 파괴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면 손익에 앞서 국가가 나서서 위기 대응시스템을 마련해 주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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