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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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명판관 포청천(包靑天)을 소재로 한 중국 드라마가 한동안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가장 멋진 대사는 바로 ‘개작두’를 대령하라는 호령이었다. 최고 지존인 황실 측근마저도 포청천의 냉엄한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포청천은 바로 백성들의 편에 서서 부패한 조직이나 권력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또’였다.

우리의 고전 속에도 정의의 사또들이 많았다. 조선 천재문학가 허균이 소설 속에서 만든 ‘홍길동’은 권력과 부패로 찌든 양반사회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한 민심의 영웅이었다. 국문학계 일각에서는 홍길동이 실제 실존인물로 선조 때 충청도에서 난을 일으킨 이몽학(李夢鶴)을 소재로 했다는 설도 있다.

고전 춘향전은 이몽룡을 이런 인물로 그린다. 그는 죄 없는 춘향을 잡아가두고 수청 들라고 강요하는 변사또를 암행어사가 되어 강력하게 응징했다.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관고(官庫)를 축내 생일잔치를 거창하게 벌이며 유부녀를 구금, 수청을 강요한 죄목이다.

어사또는 처음에는 남원고을에 거지행색으로 숨어들어가 민심을 살폈다. 그가 덕정을 베풀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고 느닷없이 관아에 들이닥치며 ‘암행어사 출또’를 외쳤다.

필자는 오래전 영화계 한 지인이 추진하고 있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제목은 ‘똥광맨’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 절간에 의탁된 어린 소년이 20대로 장성해 모처럼 서울을 구경하게 됐다. 스승이 바깥세상을 한번 돌아보고 오라는 것이었다. 택견의 고수로 성장한 청년은 서울에 오자마자 가치관의 혼돈을 겪는다.

지하철 안의 풍경을 본 청년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한 대학생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친다. 도덕교육을 철저히 받은 청년의 눈에 비친 세태는 예의염치가 사라진 타락의 도시였다. 청년은 한 아가씨의 도움으로 달동네 택견도장에서 기거하게 된다.

도장이 자리 잡은 동네는 개발 사업으로 곧 철거하게 됐으며 여기에는 조폭, 부패한 경찰관과 정치인, 악덕 재력가들의 음모가 있었다. 청년은 이들 조직과 전쟁을 벌인다.

똥광맨은 매일 저녁이면 ‘정의의 사또’가 돼 악당들을 제거한다. 폭력 혹은 부정부패의 온상을 찾아다니며 악의 축을 공격, 통쾌한 활약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추진과정에서 중단돼 영화로 탄생하지는 못했다.

지금 한국에는 정의의 사또가 사라졌다. 검찰이나 사법부에도 포청천이 없기는 마찬가지인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태산 같이 신뢰한 국민들은 최근 행보에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동안 국민들은 권력 최고핵심인 청와대까지 영장을 집행하는 등 성역 없는 수사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4.15총선 이후 한풀 꺾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가 포청천으로 되돌아가 명예롭게 직무를 수행하고 멋지게 퇴직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정의가 살고 윤 총장도 영예롭게 되는 길이다.

요즈음 불량 학생들을 응징하는 모 방송국의 드라마도 정의의 사또를 주제로 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젊은 가수 ‘이야기’가 ‘정의의 사또’라는 가요를 불렀다. ‘우린 정의의 사또, 좌우의 날 선 검을 들고 다 같이 큰 소리 치면서, 가자 악당들 두려워 물러가네, 너와 나 우린 정의의 사또 초특급 울트라 슈퍼파워. 다 같이 하나로 힘을 모아서 악당들 모두다, 힘들게 사는 인생 너만의 생각 아니야.’

오늘날도 ‘정의의 사또’ 만큼은 짱 인기를 누린다.

무소불위 180석 거대여당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권력의 맛에 빠지면 법을 어기고 부도덕한 짓을 해도 스스로 잘못인 줄을 모른다. 현대 정치사상 가장 나약하게 비쳐지는 야당에도 정의 사또가 나와야 한다. 또 검찰이나 사법부에는 법을 엄정하게 지키는 포청천이 출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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