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사이드] 구약 바벨론의 흥망성쇠… 바벨탑은 있었을까?
[종교인사이드] 구약 바벨론의 흥망성쇠… 바벨탑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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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을 쌓고 있는 모습(왼쪽)과 바벨탑을 묘사한 그림. ⓒ천지일보 2020.6.18ⓒ천지일보 2020.6.19
바벨탑을 쌓고 있는 모습(왼쪽)과 바벨탑을 묘사한 그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성경은 기독교 경서로 인류가 가장 많이 읽고, 가장 많은 언어로 보급된 책이다. 경서, 신서로 불리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그 내용에 의문점을 갖는다. 성경에 관해 일반인이 많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고증과 역사적 사실을 통해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연대기와 고증으로 풀어보는 성경<4>

 

고대 바벨론, 함무라비왕때 융성

신바벨론, 느부갓네살2세때 융성

선민 멸망시키고 사로잡은 이방

 

바벨론서 발견된 신전만 1000개

‘하늘의 산’ 바벨탑 흔적만 남아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세기 11장 1~9절)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바벨론(Babylon)은 ‘혼란케 하다’는 뜻을 가진 국명 겸 도시 이름이다. 바벨탑을 쌓았던 바벨론은 노아의 4대손 니므롯(노아의 아들 함의 손자)이 시날 땅에 건설한 나라다(창10;9~12). BC 4000년(혹은 3000년)경으로 본다. 위치는 대략 이라크 남부지방에 해당된다.

고대 바벨론과 카사이트 왕조 그리고 신바벨론 제국(갈대아제국)으로 분류된다. 바벨론의 잘 훈련된 군대는 이신, 엘람, 우루크 등의 도시국가와 강력한 왕국을 무너뜨려 제국을 이뤘다. 바벨론의 지배는 지중해까지 미쳤다.

바벨론 국토는 장 360마일(약 580㎞) 광 90마일(약 145㎞)의 대평원으로 대략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이다. 바벨론 주변국 앗수르는 이라크 북부지역, 바사(페르시아)는 이란의 남부지역, 메대(메디아)는 이란의 북부지역에 해당된다.

오리엔트 중심도시, 고대 바벨론

고대 바벨론(바빌로니아)으로 불리는 이 왕국은 BC 1600년경까지 북으로 앗수르를 포함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장악했다. 바벨론 제국의 수도 바벨론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일대의 정치, 상업의 중심지였다. 제6대 함무라비왕(BC 1792~BC 1750) 때 전성기를 맞았다.

함무라비왕은 엘람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지역을 평정해 메소포타미아 세계를 통일하고 대제국을 건설했다. ‘함무라비 법전’이라 불리는 282조로 구성된 법전을 정비해 바벨론을 명실상부한 오리엔트의 중심도시로 발전시켰다. 바벨론 사람들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인해 수학, 천문학, 점성술도 발달했다. 오늘날 쓰는 10진법, 60진법은 바벨론의 유산이다.

함무라비왕은 소도 바벨론에 성벽을 쌓고 바벨론의 수호신이었던 ‘벨(바알) 마르둑(Marduk)’을 주신으로 하고 이슈타르 여신과 탐무즈 신을 섬기는 종교를 확립했다. 각지에 이들의 신전을 세워 중앙집권제도를 수립했다.

함무라비왕이 사망한 뒤 고대 바벨론은 쇠퇴해 기원전 1531년경 히타이트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이후 BC 1220년경 앗수르가 바벨론을 공격해 함락하고 점점 판도를 확장해갔다. 앗수르는 BC 700년경 앗수르 제국으로 발전해 니느웨를 수도로 북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장악하고 한때 이집트 수도 멤피스까지 함락했다. 바벨론은 당시 앗수르가 임명한 부왕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바벨론과 바벨론 주변국 위치- 바벨론은 ‘혼란케 하다’는 뜻을 가진 국명 겸 도시 이름이다. 대략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에 위치했다. 주변국 앗수르는 이라크 북부, 바사(페르시아)는 이란의 남부, 메대(메디아)는 이란의 북부지역에 해당된다.ⓒ천지일보 2020.6.19
바벨론과 바벨론 주변국 위치- 바벨론은 ‘혼란케 하다’는 뜻을 가진 국명 겸 도시 이름이다. 대략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에 위치했다. 주변국 앗수르는 이라크 북부, 바사(페르시아)는 이란의 남부, 메대(메디아)는 이란의 북부지역에 해당된다.ⓒ천지일보 2020.6.19

느부갓네살 2세 때 번창한 신바벨론

다니엘서 등에 기록된 바벨론은 신바벨론 제국(BC 625~BC 539)이다. 앗수르는 바벨론-메대 연합국에 의해 멸망당한다(BC 612).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킨 아람계 갈대아 총독 나보폴라살이 폭넓은 지지를 얻어 왕이 돼 신바벨론 왕조를 열었다. 갈대아 부족이 세워 갈대아 왕조라고도 부른다.

원래 갈대아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강의 하류 유역 바벨론과 페르시아만 사이에 끼어 있는 지역으로 갈대아의 대표적인 성읍이 우르다(창11;28, 31). 우르는 수메르의 도시국가로 BC 1000년경 갈대아인들이 우르에 들어오면서 갈대아 우르라고 불리게 됐다. 아브라함의 고향이 갈대아 우르(UR of Chaldeans)다. 아브라함이 이곳에 살던 당시 대단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창11;28, 느9:7).

신바벨론의 황금기는 느부갓네살 2세(Nebuchadnezzar Ⅱ, B.C. 605-562년경) 때다. 유다 백성이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왕하 24~25장) 때가 바벨론이 그 영화를 자랑하던 시기였다. 느부갓네살 2세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파괴했으며 유대인을 바벨론 포로로 송환했다.

느부갓네살 2세는 바벨론 성도 중건했다. 왕은 수도 바벨론인 주신인 ‘벨(바알) 마르둑’울 비롯한 수많은 신들의 신전과 제단을 화려하게 만들었다.

예언대로 ‘고레스’에 의해 몰락한 바벨론

솔로몬 왕이 이방신을 섬긴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된다. 북이스라엘은 호세아왕 9년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했다(왕하 18;10-11). 앗수르는 바벨론-메대 연합국에 의해 멸망당한다(BC 612). 앗수르를 정복하고 번영을 구가하던 바벨론은 느부갓네살 2세 이후 급속도로 몰락한다. 벨사살(Belshazzar, BC ?~539) 왕 때,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 Ⅱ, BC 539-530)에 의해 멸망당했다(BC 539경, 단 5:30).

이사야 44장 26~28절, 45장 1~4절에는 바사왕 고레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고레스가 바벨론성을 어떻게 무너뜨릴지 그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유프라테스 강 물줄기를 막아서 마르게 하고 물길을 돌려 바벨론성을 함락할 것을 기록했는데, 실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고레스는 견고한 바벨론성을 함락했다.

고레스가 바벨론성을 공격할 때 가장 큰 문제가 성 주위로 돌아 흐르는 급한 물살이었다. 급물살로 인해 자신이 아끼는 말이 물에 휩쓸려 죽자 격분한 고레스가 군사들을 시켜 유프라테스 물줄기를 나누고 이로 인해 강물 수위가 낮아져 성안으로 들어가는 유프라테스 강줄기가 보였던 것이다. 그곳으로 고레스 군사가 들어가 바벨론성은 힘없이 함락됐다.

바사(페르시아) 제국 초기만해도 바벨론은 세계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였다. 그러나 BC 482년 바벨론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성채와 신전들이 파괴됐다. BC 331년 알렉산더 대왕이 바벨론을 복구해 대제국의 수도로 만들려고 했으나 느브갓네살의 궁에서 사망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1896년 로베르트 콜데바이 등 독일 고고학자들이 발굴하기까지 흙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다.

이란의 이슬람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 페르시아 왕정의 영광을 기린다. 이들은 페르시아제국을 연 고레스 대왕을 존경하여 기원전 539년 그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날을 이란력으로 여덟 번째 달인 아반(Aban)월 7일로 삼아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대(Pasargadae)에 모여 ‘고레스 대왕의 날’로 기념한다. 지난 1월 5일 미국 드론 공격에 사망한 솔레이마니 사령관 등의 관이 이란 국기에 덮여 이란 남서부 아흐바즈 공항에 도착해 이동되는 가운데 수많은 이란인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 (출처:AP/뉴시스)
이란의 이슬람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 페르시아 왕정의 영광을 기린다. 이들은 페르시아제국을 연 고레스 대왕을 존경하여 기원전 539년 그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날을 이란력으로 여덟 번째 달인 아반(Aban)월 7일로 삼아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대(Pasargadae)에 모여 ‘고레스 대왕의 날’로 기념한다. 지난 1월 5일 미국 드론 공격에 사망한 솔레이마니 사령관 등의 관이 이란 국기에 덮여 이란 남서부 아흐바즈 공항에 도착해 이동되는 가운데 수많은 이란인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 (출처:AP/뉴시스)

남유다의 바벨론 유수와 바벨론의 상징성

바벨론은 선민의 나라 남유다왕국을 멸망시켰다는 점에서 상징적으로 계시록에도 등장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나라 혹은 세력을 의미한다. 수많은 신을 섬긴 특성 등을 들어 사단의 나라, 우상 숭배와 배교 등으로도 상징된다. 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당한 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역사적 사건으로인해 선민을 사로잡은 나라를 상징한다. 바벨론 유수로도 표현되는 바벨론 포로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남유다인이 바벨론에 끌려간 사건을 말한다.

1차 바벨론 유수는 남유다의 여호야김 제3년(BC 605)에 있었고 다니엘과 많은 귀족이 끌려갔다. 2차는 여호야긴 때(BC 597)로 왕을 비롯한 지도자와 기술자들을 끌고 갔다. 3차는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때(BC 598~586)다. 반복된 바벨론 포로 송환으로 예루살렘성은 완전히 파괴되고 성전 성물들은 모조리 약탈당했고 왕족이나 귀족, 학자 등 식자층은 모두 포로로 끌려가고 예루살렘에는 미천한 신분만 남게 돼 공동화 현상이 생겼다(왕하 24:10~16, 렘25:9-11).

메대-바사(페르시아) 연합국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BC 538년에 바사왕 고레스가 모든 유다 포로에게 본토 귀환령을 내리면서 예언대로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 마감됐다.

"다리오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바벨탑 추정 이미지. 고고학자들은 바벨탑을 바벨론 안에 세운 지구라트의 하나로 본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바벨탑 추정 이미지. 고고학자들은 바벨탑을 바벨론 안에 세운 지구라트의 하나로 본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바벨탑은 정말 있었을까?

바벨론의 대표적인 유적이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벨탑이다. 바벨론성 발굴 결과를 종합해보면 바벨론 안에는 주신 ‘벨(바알) 마르둑’ 신전 55개를 비롯해 1000개가 넘는 신전이 있었고, 이슈타르 여신을 위한 제단만도 180개가 있었다. ‘벨(바알) 마르둑’의 신전을 지을 때 그에 딸린 거대한 지구라트도 만들었다. 역사학자들은 창세기에 기록된 바벨탑을 ‘지구라트(ziggurat)’의 하나로 보고 있다.

원래 지구라트는 수메르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지구라트는 단을 여러 층으로 겹친 건축물로 위로 갈수록 작아져서 사다리꼴의 피라미드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주위로는 계단을 만들었으며 가장 높은 곳에는 신전을 세웠다.

지구라트는 바벨론 말로는 ‘하늘의 산’을 뜻한다. 이집트 피라미드가 ‘왕의 묘’인 것에 비해 지구라트는 신들과 교신하기 위한 ‘하늘과 땅의 연결고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BC 3000년경부터 만들어져 바벨론 각지에 33개의 지구라트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란 땅에 속하는 엘람 지역에는 지구라트라는 거대한 탑이 도시마다 우뚝 솟아 있었다.

지구라트 가운데 ‘하늘에 닿을 만큼’의 높이로 쌓아올린 최고의 탑은 신바벨론 때 재건된 ‘에테메난키(‘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는 뜻)’라 일컫는 탑이다. 이것에 대해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BC484?~ 425?)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성역 중앙에 가로와 세로가 모두 1스타디온(약 177미터)이나 되는 튼튼한 탑이 세워져 있다.

바벨탑을 쌓는 모습 추정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바벨탑을 쌓는 모습 추정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 탑 위에 제2의 탑이 서 있고, 다시 그 위에 또 탑이 서 있는 식으로 해서 8층에 이르고 있다. 탑에 오르기 위해 서는 탑 바깥쪽으로 모든 층을 둘러싸듯이 나선형 통로가 나 있다. 계단을 오르면 층계참이 있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의자가 놓여 있다. 꼭대기 탑에는 커다란 신전이 있는데, 이 신전 속에는 아름다운 천으로 덮인 커다랗고 긴 의자가 있으며 그 옆에 황금 탁자가 놓여 있다. 신상 같은 것은 이곳에 안치되어 있지 않다.

이 탑은 과거 몇 차례에 걸쳐서 지어졌다가 무너지고, 최종적으로는 나보폴라살과 그 아들 느부갓네살이 쌓아올렸다. 나보폴라살와 느부갓네살은 실제로 주신 ‘벨(바알) 마르둑’을 위해 “하늘 끝까지” “하늘과 그 크기를 겨룰 때까지” 높이 쌓겠다고 호언했다. 이를 위해 불에 구운 벽돌 8500만 개가 건축에 사용됐다.

기타 문헌과 고고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탑의 정사각형 기저층은 가로 세로 90미터 가량이었으며 탑의 전체 높이도 90미터 가량이었다. 제1층은 높이 33미터, 2층은 18미터, 3∼6층은 각기 6미터였고 탑의 꼭대기에는 15미터 높이의 신전이 있었는데, 신전의 벽은 황금으로 꾸며 멀리서도 잘 보일 정도로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꼭대기의 신전은 벨(바알) 마르둑을 위한 것으로 마르둑이 쉬어 가는 장소로 생각되어 여사제 한 명 만 그곳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헤로도토스의 묘사에 따르면 이 신상과 보좌 등의 무게(순금의 무게)는 무려 800달란트(약 22톤)나 되었다고 한다. 신바벨론이 탄생했을 때 이 지구라트는 1층만 남기고 붕괴돼 있었다고 한다.

용어정의

바벨탑 : 바벨론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창세기 11장에 기록돼 있다. 역사학자들은 바벨탑을 ‘하늘의 산’을 뜻하는 건축물 ‘지구라트’의 하나로 보고 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가로 세로 약 90미터의 바벨탑이 있었으며, 신바벨론이 탄생했을 때는 1층만 남기고 붕괴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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