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별 전령사’처럼 보였다. 늘 ‘오빠’ 김정은 위원장 가까이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시중을 드는 모습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사실상 ‘왕조국가’에 다름 아닌 북한 입장에서는 이른바 ‘백두혈통’으로서의 당연한 책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크게 꾸미지 않은 담백한 인상에 환하게 웃는 얼굴은 우리 국민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늘 김여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김여정이 한 순간에 달라졌다. 갑자기 남쪽을 향해 거친 언사를 내놓더니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도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폭언을 쏟아냈다. 지난 17일 김여정은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개인 명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우선 제목부터 날이 서있다. 문 대통령을 향해 감언이설, 역스럽다는 등의 노골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담화문 내용에서도 자기변명, 뿌리 깊은 사대주의, 철면피, 뻔뻔함, 비굴, 굴종 등의 원색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이 글을 보면 지금의 김여정이 그 때 그 김여정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북한은 최근 경제상황이 생각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잖아도 대북 경제제재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사태로 인해 북중 국경까지 봉쇄하면서 경제난이 가중됐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마저 이렇다 할 진전이 없자 남쪽을 향해 거친 불만을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계속 지지부진하다는 것이 북쪽 불만의 핵심이다. 뿌리 깊은 사대주의, 무책임, 굴종 등의 표현이 나온 배경이다. 그리고 말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개성 남북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하고 그 생생한 현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상징처럼 보였던 남북관계 변화는 기대만큼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마치 큰 판이 벌어질 것만 같았지만, 모두의 속만 태우다가 거품만 만들어 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잇속에 밝은 트럼프 미 행정부가 있다. 아무리 장삿속으로 판을 키웠다지만, 막판에 그 판마저 깨버리는 그들의 파렴치한 언행은 남북 모두에게 충격적인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분단조국, 그 통한의 역사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큰 고통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북미 정상회담의 파국을 보면서 느꼈던 그 분노와 고통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다시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진다 한들 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여전히 회의적인 생각부터 앞서는 것은 분단 조국의 운명이 안겨준 불치병 치고는 가혹하고도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두 쪽으로 갈라 친 철조망을 걷어내고 평화와 통일의 길을 멈출 수 없는 것 또한 운명이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목소리에 화답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요구에 귀 기울였던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했던 ‘민족적 대의’에 복무코자 함이었다. 눈앞에 있는 그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서, 또는 우리의 힘이 약해서가 결코 아니다. 비록 트럼프 행정부가 마치 ‘꽃놀이패’를 다루듯이 ‘아니면 말고’식의 언행을 보일지라도 북한은 달라야 한다. 분단 조국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과 노력, 어려움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폭언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 김여정의 언행 치고는 경솔함을 넘어서 가히 배신적 작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역시 판을 깨자는 식이라면 그것은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참으로 못 믿을 사람들이라 해도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우리 국민인들 김여정의 언행에 과연 몇이나 공감하겠는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그 돌변의 작태, 그 중심에 김여정이 있다면 과연 그는 앞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김여정의 갑작스런 변신은 우리에겐 ‘배신’ 그 자체다. 김여정의 돌변이 비록 미국과 남측에 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궤변을 믿지 않는다. 논쟁할 필요도 없다. 그럴만한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느 날, 김여정이 다시 생긋 웃으면서 우리 앞에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그 때의 김여정은 이미 배신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김여정의 변신을 통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신뢰의 상징이 어느 날 갑자기 배신의 상징으로 각인되는 순간 판은 끝난다. 될 일도 안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런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악역이라면 굳이 김여정을 내세우지 않아도 될 일이다. 외무성이나 통전부에도 참모들이 수두룩하다. 그 유명한 김영철도 건재하다. 그럼에도 왜 김여정을 내세웠을까. 김여정을 통해 북한 내부의 불만을 ‘김정은 급’의 무게로 외화 시키면서, 동시에 김정은 체제의 ‘넘버 투’ 역할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자에 워싱턴 포스트가 언급한 ‘사실상의 대리인(de facto deputy)’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김정은 자신은 뒤로 빠지면서 대화 국면의 카드는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왜 벌써 대리인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일까. 김정은 유고 상태에 대비한 일종의 ‘분조(分朝)’에 가까운 결정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도 있지만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본다면, 혹여 있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분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포석에 가깝다. 김 위원장이 잠시 평양을 비웠을 때 국내에서는 ‘사망설’까지 나왔다. 동시에 ‘김정은 이후’에 관해서도 소설 같은 얘기들이 쏟아졌다. 따라서 최근의 김여정 급부상과 돌변은 그 화답에 가깝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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