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엊그제 주거권 관련 토론회가 있어 참석했다. ‘갭투자’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했다. ‘갭투기’라고 써야 한다고 한마디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무엇을 ‘갭투자’라 하는가. 전세 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서 비싸게 되파는 ‘재테크 방식’이다. 전체 주택 가격의 10~20%만으로 집을 여러 채, 수십 채, 수백 채씩 사서 ‘시세차익’을 남기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사회는 이들에게 ‘다주택자’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잘못된 이름이다. 악성투기꾼이라고 불러야 한다. ‘갭투자’라는 말도 잘못됐다. 집을 매점매석해서 집값을 폭등시키고 불로소득을 가져가는 행위를 어떻게 ‘투자’라고 할 수 있나? ‘갭투기’라 불러야 한다.

정동영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 6월 말 기준으로 상위 30명이 보유한 임대주택은 총 1만 1029채로 1인당 평균 367채이다. 제일 많이 가진 사람은 594채이고 400채 넘게 보유한 사람은 8명이다. 300채 넘게 보유한 사람은 18명에 이른다. 2015년 말에 등록임대주택은 59만 채였는데 2018년 6월 말에 143만채에 이르렀다. 2년 반만에 무려 84만채가 증가됐다. 대부분 ‘갭투기’ 방식으로 보유한 주택이다.

투기꾼들은 굶주린 메뚜기 떼처럼 평온한 마을을 초토화시킨다. ‘갭투자원정대’까지 만들어 주거지를 들쑤시고 다닌 지 오래됐다. 미분양 아파트를 ‘갭투자’ 대상으로 삼고 대량으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가격을 올리고 제 때에 다른 사람에게 팔고 먹고 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수십년 동안 같은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데 별다른 제지도 받지 않고 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직장을 다녀야 하는 지역주민만 애간장이 탄다.

17일 국토부는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과 대전, 청주로 규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비규제 지역으로 투기세가 확대될까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수도권 전역으로 규제를 확대한 것은 잘 한 일이다. 문제는 너무 늦었다는 거다. ‘갭투기’꾼들이 이미 투기판을 벌여 ‘수익’을 챙기고 떠난 뒤 대책을 들이밀어서는 투기꾼들의 비웃음을 살뿐이다.

국토부가 투기가 기승을 부리거나 투기의 기운이 넘치는 지역을 ‘투기과열지구’ 또는 ‘투기조정지역’으로 지정하는 사이 ‘갭투기꾼들’은 또 다른 투기지역을 물색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발 빠름’을 자랑하고 있다. 정부는 투기꾼을 한 참 뒤에서 뒤쫓아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의지가 있었다면 투기를 근절하는 건 몰라도 투기의 흐름을 꺾는 데는 성공했을 것이다. 현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만 해도 투기세력은 조심스러워했다. 집권 직후 정부가 하는 행동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기 직전 2년간 숨 가쁘게 오르던 집값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기 직전 잠시 주춤한 시기를 빼고 줄기차게 올랐다. ‘4년 또는 8년 거주 보장’이라는 명분으로 문재인 정부가 등록임대업자에게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주고 주택가격의 80%까지 대출을 해주어 집값 폭등에 불을 질렀다. 정부의 나쁜 정책으로 ‘갭투기’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더욱 큰 문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집값 폭등은 문재인 정부에서 민심이 떠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정권의 명운을 가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투기 과열지구 등 규제 지역 확대, 대출 규제 등의 방법을 동원해서 집값의 폭등세를 잡는데 겨우 성공했다. 투기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근본 대책이 아니라 임시방편의 찔끔 대책에 머무른 점이 문제다. 핀셋 규제 같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풍선효과가 초래되면서 여전히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갭투기’를 일삼는 투기꾼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게 필요하고 나아가 ‘갭투기방지법’을 제정해 투기를 원천적으로 뿌리 뽑는 게 필요하다. 투기 지역을 찍어주고 투기를 유도하는 ‘부동산 강사’를 비롯한 투기조장세력과 ‘투기기획세력’을 강하게 처벌하는 법률을 만들어 투기를 뿌리 뽑아야 한다. 투기 규제지역 지정과 대출규제만 하고 이들 투기조장세력을 방치해 놓는다면 언제 어디서 투기판을 벌일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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