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개종’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우리사회에 이슈화 된 것은 2008년 진용식 목사가 ‘개종을 목적으로 정백향씨를 정신병원에 감금한 사건’으로 법원으로부터 철퇴를 맞으면서부터다.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으로 이단상담소장을 맡고 있었던 진 목사는 정씨의 종교를 포함해 기성교회에서 소위 ‘이단’으로 규정된 곳에 출석하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강제개종을 진행했고, 이후 강제개종 사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기 목사들이 직접 나서서 강제개종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그 수법이 달라졌다. 먼저 강제개종 목사들은 표적이 되는 신도의 가족에게 먼저 신도가 다니는 교단에 대한 비방으로 공포감과 불안감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랑하는 자녀나 아내, 부모가 이단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납치‧감금‧폭력 등 불법 행위로 점철된 개종 프로그램은 가족을 살리기 위한 ‘지푸라기’가 된다. 이같은 이간질에 21세기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대한민국에서 강제개종은 아직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본지는 강제개종으로 인해 인권이 침해되고 억압을 받으면서도 하소연 할 곳조차 없는 피해자들의 눈물 섞인 호소를 연재하고자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밀려오는 공포‧배신감에 잠못 이뤄

부모님, 짐승 취급해 개종 장소로

철조망 쳐진 기도원서 23일 감금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도 외면해”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강제적으로 자녀의 개종을 시도하는 부모들은 개종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조장하는 개종 목자들의 말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한 개종 프로그램에 자녀를 데려가는 것에 실패를 해도 포기하지 않고 더 충격적인 수단을 이용해 재차 시도한다. 서정남(가명, 남, 대구시 남구)씨의 부모도 그러했다. 1차 개종 프로그램이 실패로 끝나자 수면제와 수갑을 동원해 서씨의 몸을 결박하고, 여행용 가방에 밀어넣은 후 개종 장소까지 이동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 인권은 없었다. 다음은 서씨의 호소문 전문이다.

제 기막힌 사연을 들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인권 유린을 두 번이나 겪었고, 지금 생각을 해봐도 너무 충격적이고 밀려오는 공포감과 배신감으로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평소 누구보다 성실하게 생활하시던 부모님, 신** 목사라는 사람의 말에 현혹됐습니다. 

그리고 2012년 8월 5일 저는 집에서 부모님이 주시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먹은 이후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조금씩 정신을 잃어 갔습니다.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정신을 조금 차려보니 가족들이 저를 잡으려고 하였고, 온 힘을 다해 저항을 해봤지만 수면제가 든 음식 먹은 후여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손목에 수갑을 채웠고 발과 허벅지 종아리에는 테이프를 몇 겹씩 감았습니다. 또 소리 지르지 못하게 입도 테이프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여행용 기다란 큰 가방에 얼굴과 목과 어깨만 빼놓은 채 넣었습니다.

그렇게 아파트 15층에서 1층까지 운반해 승용차 뒷자석에 저를 실었습니다.

이때 시간이 밤 12시가 넘었고, 이렇게 강제로 납치돼 간 곳은 경기도 양평의 인적이 드문 산 골짜기였습니다. 거기는 A기도원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승용차 뒷 자석에서 4시간 이상을 차를 타고 대구에서 경기도 양평까지 옮겨졌습니다. 저는 정신이 없어서 너무나 힘들게 차 뒷좌석에 있었습니다. 도착한 기도원은 창문마다 철조망이 쳐져 있었습니다. 1층이었으며 제가 도망갈지도 모른다며 수갑을 채운 채 그곳에서 지내게 했습니다.

정말 지옥 같았고 풀어 달라고 사정을 해 보고 강하게 저항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23일간 저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기도원에 감금 된 상황에서 도망가려고 하면 폭행을 당했습니다. 화장실 조차 감시 속에서 가야 하는 짐승만도 못한 인권 유린을 당하였습니다.

제가 짐승처럼 기도원에 감금되어 있을 때 친구들의 신고로 경찰이 감금 장소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비참한 상황에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저에게 화를 내며 부모님이 입장을 생각하라고 하며 돌아갔습니다.

다행히 친구들의 계속된 신고로 경찰은 다시 와서 저는 그 감금 장소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대한민국에서 납치 감금 폭행이 일어나고 경찰도 보호해주지 않는 편파적인 상황에 저는 그 장소에서 나온 이후에도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저는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1년 5월경 부산에 황모 목사라고 하는 사람의 사주와 계획에 넘어간 부모님은 황 목사가 시키는 대로 온갖 폭행과 감금을 해 제게 큰 고통을 안겨줬습니다.

황 목사는 제 부모님에게 제가 마치 죽을 병에 걸린 정신이상자로 몰아가서 개종 프로그램을 자신에게 받아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그 말에 사로잡힌 부모님은 저에게 개종 프로그램을 강조하였지만 저는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황 목사의 지시를 받은 아버지는 제가 어머니의 가게를 돕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승용차로 이동하던 중 잠시 할머니 댁에 반찬을 가지러 들렀다가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말씀에 아무런 의심 없이 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그곳엔 외국에 있던 큰아버지와 이모부와 친척들이 있었고, 제가 소파에 앉았을 때 갑자기 움직이지 못하도록 저를 제압하고 휴대폰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감금 했습니다. 이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황 목사는 2시간 뒤쯤 나와 제게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강제로 개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심하게 반항했지만 가족들에게 제압당하고 폭행을 당했습니다.

당시 심하게 저항해 제 온몸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연락이 되지 않자 친구들이 경찰에 신고도 했고, 아버지의 학교에 찾아가 항의를 하고 시위도 하니 부담감을 느끼는 황 목사와 부모님은 감금 4일차에 저를 풀어줬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와 부모님은 한 집에 살았지만 불신이 더해갔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또 나를 납치 감금하지 않을까 불안에 떨면서 지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인권유린이 개종 목자와 추종자를 통해 일어나고 있어 이렇게 간절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저와 부모님은 이 사건 이후 지옥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 누구도 이러한 상황을 보상해주지 않습니다.

다시는 저희 가족과 같은 피해자가 개종 목사를 통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호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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