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윤 총장도 변신하면 가능하다”는 武大의 말
[아침평론] “윤 총장도 변신하면 가능하다”는 武大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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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우리 정치사에서 유명정치인들의 부침(浮沈)이 심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잘 나가다가도 정치적 타격을 받아 정치현장을 떠나게 되고, 또 잊어질 만하면 예상을 깨고 화려하게 등장해 권좌에 올랐던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금은 역사 속으로 묻혔지만 ‘3김(金)’이다. 1970년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현재는 ‘원내대표’로 명칭이 바뀌었음)를 맡았던 김영삼 원내사령탑이 1971년 대선을 앞두고 ‘40대기수론’을 제창하면서 출마 선언했고, 이어 김대중 의원의 출마 선언과 이철승 의원의 출마 선언이 연달아 이어졌던 것이다. 

당시 신민당 대선 후보는 유진산 총재계인 김영삼 원내총무가 유력했다. 70년 9월 열린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유 총재는 김영삼 의원을 후보로 지명했고, 1차 투표에서 대의원 885표 중 421표를 얻어 상당한 표 차이로 최다득표자가 되었으나, 결선투표에서 이철승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판세는 역전돼 김대중 의원이 과반이 넘는 358표로 71년 대선 후보로 지명됐던 것이다. 그 이후 김영삼 의원은 적지 않은 세월을 힘들게 보냈고 14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개인적 고난과 정치적 부침이 매우 심했음은 정치사에서 널리 알려진 대목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와 박정희 대통령과 겨뤘으나 95만표 차이로 박정희 아성을 넘지 못했다. 낙선의 패배를 맛본 후 한동안 정치와 단절하고 해외에 나가있던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한국정보기관 요원에게 납치돼 죽음 직전에 구출되기도 했다. 또 신군부세력이 권력을 잡았던 1980년에는 내란 음모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르는 등 갖은 고생 끝에 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거기에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으니 그의 정치적 부침은 ‘인동초(忍冬草)’라는 개인 별명에 걸맞기까지 하다. 

3김 시대의 마지막 주자였던 김종필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 이후 지도자로 예상됐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또 나머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명성을 떨친 지도자들이 많았으나 3김보다는 무게감에서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이 워낙 출중해 늦게까지 정치계를 장악했던 면도 작용했겠지만 정치적 변곡점으로써 격랑이 심했던 70~80년 한국정치에서 군부가 장악했던 점도 하나의 요소로 작용된다. 

화려했던 3김 시대가 마감되고 나서 한국정치에서는 정치적 위상을 겸했던 뚜렷이 부각된 정치지도자가 없었다. 그렇긴 해도 현실정치가 이어지면서 노무현의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탄생되긴 했으나 민주주의 발전과 참다운 국민의 정부라는 평가보다는 결과적으로 나타났듯 권력이 누수된 불행한 정치의 연속이었다. 한국정치사에서 불안한 시대로 자리매김한 권력을 성숙되지 못한 정치 풍토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언가 허전한 아쉬움이 있다. 

선진국 정치나 오랫동안 제도화된 전통적 정치에서는 시스템에 의한 정치가 가능하지만 환경이 복잡하고 갖가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후진적 정치 여건 아래서는 지도자 한사람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특히 대통령 단임제가 실현되고 있는 한국정치의 경우 5년 임기동안 절대적 권력으로 인해 정당정치의 공존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양당정치가 고착화된 마당에서는 여야 협치가 최상이라고는 하지만 능력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없는 한 의회에서는 언제든지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으니 이 또한 후진적 정치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한국정치의 현실과 장래가 밝지 못한 여건에서 차기 대선 지도자에 관한 야당의 소식은 새롭다.  

최근 김무성 전 통합당 의원이 야당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섰다는 것인즉, 지나간 이야기지만 김 전 의원이 여당 대표시절, 대선 후보감으로 국민 지지도 1위에 올랐던 YS(김영삼 이니셜)계 정치인이다. 그 역시 오랫동안 정치생활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었으니 킹 메이커 역할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YS가 정치하던 시절, 상도동 식객으로 현장에 발 들여 정치를 배웠고,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다가 내무부차관으로 옮겨 중앙행정 경험을 닦았고, 이후 집권여당 대표까지 올랐으니 무대(武大 : 무성대장, 김무성 전 의원 별명)가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킹 메이크’ 하겠다는 것은 놀랄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6선 의원을 마치고 난 김무성 전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과거의 뼈아픈 실패를 오늘로 이어 반성하고, 미래를 비추는 등불 구실이 되게 만들면서 킹 메이크 역할론으로 재기를 꿈꾼다는 것인즉, 그의 바람대로 권좌를 잃은 제1야당이 다시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무한 노력을 사실 그대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2년 후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무대가 이심전심으로 뱉은 말 “윤석열 검찰총장도 변신하면 가능하다”는 발언은 특이한바, “정치사고의 유연성과 사고의 민주성을 갖추면 대단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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