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림(1956-  )

꼬막은 힘으로 벗기는 게 아니다 지문으로 리듬을 타서 벗겨야 한다고 갯벌식당 아줌마는 배시시 일러준다 여자灣 개펄이 길러낸 벌교 사람들은 깊고도 찰지다 뻘 같은 세상 속에서 한겨울 꼬막처럼 일찌감치 속살이 찼다 양식이 안 되는 참꼬막같이 탱탱한 벌교 사내들 앞에서는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개펄같이 푹푹 빠져드는 벌교 아낙의 말씨는 꼬막처럼 쫄깃쫄깃하다 널배로 기어 다니며 피었다 지는 아낙들, 갯비린내 물쿤물쿤 나는 뻘이라는 말의 안쪽에는 빨아 당기는 힘이 있다 질긴 목숨들이 무수히 들러붙어 있다.

 

 

이제 봄이 마악 찾아온 갯벌에서 속살이 차질게 여물어가는 꼬막을 캐는, 꼬막처럼 쫄깃쫄깃한 말씨의 아낙을 만난다. ‘뻘 같은 세상 속에서 한겨울 꼬막처럼 일찌감치 속살이 찬’ 사람들을 만난다. 이 사람들을 보며 ‘힘이 아닌 리듬’이 삶의 지혜임을 배운다. 함부로 주먹이나 휘두르는 세상, ‘주먹자랑’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도 새삼 배운다. ‘갯비린내 물쿤물쿤 나는 뻘’이라는 말의 안쪽에 빨아 당기는 힘이 있듯이, 뻘에 들러붙어 살아가는 그 무수한 질긴 목숨들.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인지, 새삼 깨달아간다. 깊고도 찰진 여자灣 갯벌에 서서.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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