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38분 평양 땅에 내려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마중 나온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출처: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천지일보 2018.4.18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38분 평양 땅에 내려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마중 나온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출처: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천지일보 2018.4.18

2000년 남북 정상 역사적 첫 만남

화해→협력→평화로 나아가는 단초 돼

北, 대북전단 문제로 南과 또다시 대립각

전문가 “정부, 인내로 할 수 있는 것부터”

대립과 화해 반복의 역사… 고리 끊어내야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남과 북은 지금까지의 대결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뒤 평양 순안공항을 떠나는 가운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포옹하면서 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만남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을 정도였다.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한반도 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를 선언했던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하지만 그간 남북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온 의미가 무색하게 북한은 현재 모든 남북 간 통신선을 차단하고 남측과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 평화시계가 다시 거꾸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걸어온 지난 2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꽉 막힌 남북관계의 해법은 없는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짚어봤다.

◆6.15 공동선언, 남북 화해 시대 열어

남북 화해의 시대가 열렸다. 실제 6.15공동선언은 그저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남북은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 경제의 균형 발전 등이 적시된 ‘6.15 정상선언’ 채택 이후 각 분야에서 폭넓게 교류가 진행됐다.

금강산관광이 본격화하고 개성공단이 조성되면서 남북이 더는 반목과 대결로 점철돼온 과거의 역사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는 기대감도 확산됐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2007년 10월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돼 ‘10.4선언’을 끌어냈다. 2007년 북핵 6자회담에서는 ‘9.19 공동성명’의 첫 단계 이행계획인 ‘2.13 합의’가 도출되는 등 성과도 거뒀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앞선 보수정권 하에서 멀어진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문 정부는 적극적인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북한이 이듬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호응하면서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탔다.

2018년 4월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손을 맞잡았다. 나란히 판문점 도보다리를 산책하고 단독 회담까지 가진 두 정상은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또한 그해 9월 문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등은 달라진 남북관계에 대한 희망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면서 마침내 냉전의 마지막 공간인 한반도에도 평화가 깃들 것이라는 열기가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다.

6.15 공동선언으로 시작된 지난 20년은 화해에서 협력으로, 협력을 넘어 평화로 가는 지난한 여정이었다. 물론 그간 남북관계는 많은 부침도 겪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등 남한 정권교체에 따른 대북정책 변화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 때문이라는 데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판문점 자유의 집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출처: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판문점 자유의 집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뉴시스)

◆北통신선 차단… 남북관계, 또다시 요동

남북관계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북한이 지난 9일 갑자기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 연락채널을 모두 차단하고 나서면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남측이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한다’며 남북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그 다음날엔 통일전선부 담화를 통해 ‘갈 데까지 가보자’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 중’이라고 압박하더니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6.15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은 올해 다시 남북관계가 위기에 처한 셈인데, 북한 매체가 우리 정부의 6.15 20주년 행사를 ‘철면피한 광대극’이라고 한 비난은 현재의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잘 대변해준다.

남북관계 교착은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제재 완화에 대한 이견으로 ‘노딜’로 끝나면서 발단이 됐다. 북미 양측 정상이 비핵화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하자 남북관계도 벽에 부딪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철도·도로 연결 등 청사진을 그렸지만 대북제재로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문 대통령도 이 점을 주목하고 지난 4월 27일 ‘남북 판문점공동선언 2주년 기념사’에서 판문점 선언이 그간 실천되지 못한 것은 국제적 제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판단 아래 지난해 말부터 촉발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현실적 제약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것인데, 코로나19 협력으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동력을 확보해보겠다는 고민의 결과였다. 최근 추진 중이던 동해 북부선 연결 공사를 시작한 것도 경의선 공사 재개까지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은 우리 측 제안에 일체 반응을 하지 않았고, ‘남측이 줏대 없이 미국 눈치만 본다’는 등 불만만 쌓여오는 와중에 대북전단 문제를 계기로 결국 대화 단절을 선언했다.

김여정 대북전단 조치 안 하면 남북 군사합의 파기 경고 (PG)[김민아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출처: 연합뉴스)
김여정 대북전단 조치 안 하면 남북 군사합의 파기 경고 (PG)[김민아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출처: 연합뉴스)

◆남북, 당분간 경색… “결국 대화 나설 것”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앞둔 지금의 남북관계는 통신선 차단이라는 단절을 넘어 ‘대결 구도’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경고한 것처럼 북한은 다음 수순으로 남북 간 적대행위 중지를 명기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대남 군사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사합의마저 파기된다면 접경지대에서의 남북 간 군사적 긴장감은 한층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신범철 박사는 12일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제1부부장이 밝혔기 때문에 남북 군사합의 파기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리 정부를 대적이라 간주하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불가피한 경우 군사적 충돌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법안을 추진하는 등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그간 북한의 강경한 태도로 볼 때 전단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당분간 쉽게 풀릴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이뿐 아니라 북한이 이미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노동신문 등을 통해 대남공세를 주민에게 알리는 등 사회적 이슈로 몰아가는 분위기여서 태도를 바꾸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 박사는 “난감한 상황이지만 일단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 중지 등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맞대응하지 않는 것도 전략”이라면서 “남북 간 경색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가 아닌 정부가 그들이 의도하는 바를 발빠르게 파악하는 등 남북관계 긴장감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원칙을 지키고 인내를 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야 한다’는 게 신 박사의 주장이다.

문성묵 통일전략안보센터장은 통화에서 “이번 연락채널 차단처럼 과거에도 북한은 수차례 단절과 복원을 반복해왔기 때문에 적당한 때가 되거나 적절한 구실이 되면 다시 대화 창구에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찌됐든 지난 2000년 남북 정상이 마주선 후 또다시 20년이 흘렀음에도 남북 간 대립이 여전한 상황이라 개운치 않지만, 적정한 시점에 북한이 다시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사실만은 자명하다는 게 공통적인 견해다. 남북관계는 대립과 화해를 반복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만 이 고리를 어떻게 끊어내고 남북 분단체제를 넘어서느냐가 관건이다. 어차피 통일이라는 가까운 미래를 향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이다.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비무장지대(DMZ)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발표한 가운데 2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을 시민들이 찾고 있다. 임진강 넘어 북쪽 방향이 보이고 있다.ⓒ천지일보 2019.6.29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비무장지대(DMZ)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발표한 가운데 2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을 시민들이 찾고 있다. 임진강 넘어 북쪽 방향이 보이고 있다.ⓒ천지일보 2019.6.29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