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겸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전광훈 총괄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 전 차로에서 열린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에서 발언하자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천지일보 2020.1.4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겸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전광훈 총괄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 전 차로에서 열린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에서 발언하자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천지일보 2020.1.4

엄기호 목사, 지난달 21일 회견서 주장

한기총, 사실상 태생부터 보수 정계 연결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그동안 수년 동안 한기총이 독단적인 운영과 패거리 정치, 보복성 징계, 제명 등 폐쇄적인 운영으로 제 기능과 역할을 못 한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이용돼 그 위상과 명예가 추락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비대위원장 엄기호 목사가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전광훈 목사의 직무정지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기총에 대해 한 말이다.

엄 목사는 한기총이 과거 개신교 대화 채널로 정부와 밀접하게 일해왔지만, 최근에는 잘못된 방향, 정치적 방향으로 흘렀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에 물의를 빚는 단체로 전락했다면서 한기총의 독단적인 운영과 패거리 정치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한기총이 정치에 이용당해 위상과 명예가 추락했다”는 엄 목사의 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전 목사의 대표회장 취임은 한기총의 정치성을 세상에 드러낸 하나의 계기가 됐을 뿐, 사실 따지고 보면 한기총은 태생적으로 정계와 하나 된 종교단체였다.

한기총의 창립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1980년대 후반 당시 6월 항쟁 이후 보수 세력의 기가 꺾이게 되면서 사회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이 한층 더 들끓었다. 이러한 시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당시 KNCC, 현재 NCCK)가 1988년 2월 29일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통일선언)’은 정부를 당황케 했다. NCCK의 통일선언이 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던 기존 관행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간도 통일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사건이었다.

이웃 종교지도자들과의 교류에 힘썼던 한경직 목사의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
이웃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있는 한경직 목사(왼쪽)의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

정부는 NCCK에 맞서 총대를 메고 싸워줄 개신교 세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이북 출신이었던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보수파 장로교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1989년 12월 한기총이 탄생했다.

당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제5공화국 문건을 보면 한기총의 설립이 정권의 지원 아래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오충일 목사는 2005년 4월 인터넷언론인 포럼에서 안기부 종교담당 요원이 한기총 창립에 구체적으로 개입했다고 밝혔다. 한기총 창립에 안기부 요원이 구체적으로 개입했다는 증언은 한기총이 출발부터 종교단체보단 정치단체에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생부터 보수 정계를 등에 업은 한기총은 1990년대에는 자체집계 회원수 1200만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한국 보수 개신교계의 상당히 큰 축을 담당했다. 한기총은 지난 30년간 권력을 앞세워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정권에 아부하며 교계와 보수를 대변했다.

1992년 대선 당시에는 장로 출신이었던 김영삼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사학법 개정 반대, 주한미군 철수 반대 운동 등을 외치며 정부에 맞섰다. 당시 한기총 소속 목사들이 삭발하고, 바퀴 달린 십자가를 끌고 다니는 모습은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오후 7대 종단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 북한 상황을 설명한 후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간담회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개신교 길자연 목사,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 천도교 임운길 교령,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민족종교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앞줄 왼쪽부터 길자연 목사, 이명박 대통령, 자승스님. (사진제공: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1년 당시 7대 종단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 인왕실로 함께 이동하고 있는 모습. 간담회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개신교 길자연 목사,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 천도교 임운길 교령,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민족종교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앞줄 왼쪽부터 길자연 목사, 이명박 대통령, 자승스님. (사진제공: 연합뉴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활동을 자제하고,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2011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선 한기총 대표회장(당시 길자연 목사)앞에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을 꿇어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은 신앙인으로서의 기도 자세를 취한 것이라 했지만 종교의 정치개입이 수위를 넘었다며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이는 한기총의 권력이 그만큼 막강했다는 방증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2011년 한기총은 금권선거 의혹 등이 터지며 큰 타격을 입고 분열했다. 주요 교단들이 탈퇴해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라는 또 다른 보수 연합 기구를 만들었다.

힘을 잃은 한기총이 재기를 꿈꿀 때 ‘정치 목사’라 불리는 전 목사가 등판했다. 그는 보수 개신교계 대표 연합 기구라는 한기총의 위상을 등에 업고 거침없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로 규정하는가 하면 하야를 요구하며 광화문에서 정치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의 막말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한기총도 함께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고, 교계에서는 ‘곪을 대로 곪은 한기총이 해체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지일보 2020.6.10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광화문 100만 투쟁대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전 목사는 보수 성향 단체 및 인사들로 구성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투쟁본부)에서 총괄 대표를 맡았다. ⓒ천지일보 2020.6.10

결국 이런 모든 정황상 “한기총이 정치적으로 이용됐기 때문에 한기총의 위상과 명예가 추락했다”라는 엄 목사의 말은 논리적 비약이 담긴 주장으로밖에 보일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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