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국립묘지 파월 부대 지역.

반백의 한 사내가 힘겹게 지팡이질을 하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더니 이윽고 어느 비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 김명구 병장의 묘.’

한동안 선 채 묘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사내는 이윽고 무너지듯 주저앉더니 오열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들썩거리는 사내의 어깨는 견골이 드러날 만큼 앙상했고, 떨리는 목덜미가 닭 모가지처럼 가늘어 보였다. 얼굴도 그 피폐함이 말이 아니어서 검고 거친 피부 하며 누런 눈빛이 모르면 몰라도 꽤 중병을 앓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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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명구는 월남 파병부대에 자원한 용사였다. 입대 날짜가 비슷해 같은 소대로 배속되자 둘은 단짝이 되었다. 지원 동기도 다르지 않았다. 돈 때문이었다. 명구는 틈만 나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논이라고는 겨우 천수답 4마지기뿐인 빈농의 7남매 맏이야.”

명구의 소원은 동생들을 배 곯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명구는 노름판에도 눈에 불을 켜고 뛰어들었다. 당시 일선부대에서는 미군들이 즐겨하는 포커게임이 자주 벌어지곤 했는데, 부대장들은 베트콩의 기습에 따른 두려움과 긴장해소 차원에서 이를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투지가 남달라서 그런지 명구는 이런 포커판에서조차 돈을 잃는 적이 별로 없었다. 져도 조금 지고, 딸 때는 판을 쓸다시피 했다.

“불쌍한 놈한테 기부했다 쳐.”

판돈을 챙길 때마다 명구는 이런 말도 잊지 않았다.

특이한 현금 보관법도 명구만의 방식이랄 수 있었다. 딴 돈과 봉급을 합쳐 항상 고액 달러로 바꾸어서는 자신이 직접 보관했던 것이다.

그도 돈에는 악착같았다. 하지만 노름은 하지 않았는데, 자신만의 확고한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그의 생활태도는 이랬다. ‘요행을 바라지 말되, 수중에 들어온 돈은 결코 내놓지 말 것!’ 그는 고아와 비슷했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어릴 적부터 먼 친척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머슴 비슷하게 지내왔는데, 그의 꿈은 제대할 때까지 독립할 장사 밑천을 장만하는 것이었다.

한데, 운명은 인간적 노력에 부응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극적 사건은 귀국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마지막 수색을 나갔던 날 터졌다. 베트콩의 저격이 명구의 왼쪽 가슴을 정확하게 뚫어버렸던 것이다. 피거품과 함께 숨을 몰아쉬며 명구는 괴춤을 가리킨 채 그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이 돈, 내 대신 꼭 좀 집으로 보내주게. 자네만 믿네.”

이것이 명구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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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거친 손으로 묘비를 쓸며 울먹였다.

“벌써 33년이 흘러버렸군. 이제 날 용서하게.”

사내의 쪼그라진 얼굴에는 구정물이 튄 듯 땟국이 번들거렸다.

“제대 후 소원대로 장사를 시작했지만 일이 풀리지 않았네. 뭐든지 손만 댔다 하면 꼬였어.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달았지. 이게 모두 자네한테 지은 죄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사내는 눈물을 훔친 손으로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한 뭉치의 달러를 꺼내놓았다.

“지난 십 년 동안은 오로지 자네한테 진 빚이나마 갚고 죽을 요량으로 버텨온 삶이었어. 거의 비렁뱅이처럼. 그리고 한푼 두푼 돈이 생길 때마다 모아두었다가 달러로 바꾸었지. 지금 와서 이래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네를 저승에서 만났을 때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아서….”

뒷말을 흐리며 사내는 돈을 묘비 앞의 돌 화병에 넣었다.

“당시 자네 괴춤에 숨겨두었던 달러와 꼭 같은 액수네. 자네 가족한테 전해주지 않고 내 장사 밑천으로 써버린 돈이지.”

사내의 눈에서는 연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 소원이 있다면, 어느 착한 사람이 이 돈을 발견해서 행운을 가져다준 자네에게 매년 찾아와 절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네.”

사내는 눈물 젖은 손으로 다시 한번 비석을 쓰다듬고는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힘겹게 걸음을 떼어놓는 사내의 등 뒤로는 큰 비라도 내리려는지 시나브로 하늘이 검게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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