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아동학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체벌 친권자엔 예외적허용도

‘훈육’ 목적 사유로 감형받아

아동인권단체, 조항삭제 촉구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1 지난 3일 충남 천안에서 의붓어머니에 의해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 있다가 발견된 9살 초등학생이 숨을 거뒀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의 의붓어머니 B(43)씨는 그를 7시간 넘게 가방을 옮겨가며 가뒀던 것으로 파악됐다. 친부와 B씨는 지난 5월 13일에도 A군을 학대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이들은 “많이 후회하고, 훈육 방법을 바꾸겠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아이를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2 지난달 29일 오후 6시 20분쯤 경남 창녕에서 잠옷 차림으로 성인용 슬리퍼를 신고 도로에서 도망치듯 뛰어가던 C(9)양이 시민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A양은 눈에 멍이 들고 손가락에는 화상을 입어 심한 물집이 잡혀 있는 등 온몸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C양은 경찰조사에서 자신이 2018년부터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아이들이 ‘훈육’과 ‘학대’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부모로 인해 온 몸과 마음에 멍이든 채 죽어가고 있음에도 관련 법안 개정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아직도 재판장에 올라선 부모들은 관련 법에 따라 훈육을 했을 뿐 학대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의붓어머니가 3일 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의붓어머니가 3일 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 민법 제915조 “필요시 징계 가능”

민법 제915조에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조문은 1960년 민법 제정 이후로도 계속 유지돼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예부터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이 수용된 사회 환경 속에서 자라 ‘아이가 잘못해서 혼나는 구나’ 혹은 ‘남의 가정사에 괜히 끼어들면 안 돼’로 그쳐 실제 아동학대가 일어나도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적다.

아동에게 신체·정신적 고통 등 학대를 가했을 경우 아동복지법 제5조 제2항(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 금지)에 따라 처벌하도록 돼 있다.

다만 경우에 따라 부모의 자녀에 대한 체벌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고 해석될 수 있어 민법상 징계권으로 형량이 줄어들거나,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2017년 6월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다며 당시 6살 딸의 등과 손을 철제 옷걸이로 10여 차례 이상 때려 학대한 혐의를 받는 엄마에게 항소심 재판부는 형을 낮췄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제2형사부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D(39, 여)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의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부수적으로나마 훈육의 목적이나 의도가 내포됐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원심 형량이 다소 무거워 부당하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창녕 아동학대 피해 아동. (출처: 채널A 뉴스 캡처)
창녕 아동학대 피해 아동. (출처: 채널A 뉴스 캡처)

◆ 아동인권단체들 “민법 징계권 삭제해야”

국제적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등 아동인권단체들은 계속해서 민법의 징계권 조항 삭제를 촉구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3일 천안에서 발생한 계모 사건을 두고 애도를 표한다며 지난 5일 낸 성명서에서 “민법(제915조의)의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고, 가정 내 체벌금지 법제화를 조속히 실현해야 한다”며 “관련 부처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해 가정 내 체벌금지 법제화를 위한 민법 개정에 조속히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고, 가정 내 체벌금지 법제화를 실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아동에 대한 체벌을 용인하고 폭력을 방조하는 데는 우리 사회의 견고한 통념과 제도가 한 몫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죽음의 문턱 전까지 사망 아동은 부모의 지속적인 체벌에 시달렸지만, 경찰은 온몸의 멍과 상처로 아동이 보내는 구조 신호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며 “‘학대 사례를 철저히 확인∙보고∙조회∙조사∙처리∙추적(유엔아동권리협약 제19조)’해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포용국가 아동정책'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포용국가 아동정책'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 ‘포용국가 아동정책’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

‘민법 제915조 삭제’는 지난해 5월 보건복지부(복지부)가 ‘포용국가 아동정책(관계부처 합동)’을 발표하면서 검토되기 시작했다. 당시 복지부는 ‘징계권 용어 변경 및 한계 설정’을 추진과제로 설정해 체벌을 ‘징계’가 아닌 ‘학대’로 규정하는 데 사회적 인식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도 지난해 제5·6차 대한민국 국가보고서 심의를 통해 “모든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국가의 책무를 다하라”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해당 법률 개정에 대한 움직임은 복지부의 발표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올해 5월이 될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8일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법제개선위)’가 아동권리가 중심이 되는 양육 환경을 조성하고 아동에 대한 부모의 체벌 금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민법 제915조 징계권을 삭제하고, 민법에 체벌 금지를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법제개선위의 권고를 토대로 민법 및 가족관계등록법 등 관련 법제의 개선방안을 마련해 여성·아동의 권익 향상 및 평등하고 포용적인 가족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이 법무부가 노력하겠다고 밝혔으나, 민법 제915조의 징계권을 삭제할 지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일각에서는 복지부의 발표 이후 1년간이나 큰 변화가 없었는데 법제개선위의 권고로 징계권이 삭제되겠느냐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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