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6.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6.8

법원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

“불구속 원칙 반할 정도 아냐”

기소 가정 재판과정 언급도

 

이 부회장 측, 한숨 돌렸다

검찰, 졌지만 소득 없진 않아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삼성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에 이 부회장은 한 숨 돌리게 됐고, 검찰은 멈춰서야 했다.

겉으로만 봐선 검찰이 마냥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 측도, 검찰도 나름의 얻어간 것이 있다는 관측이다.

천지일보는 법원이 사용한 표현을 뜯어봐 그 의미를 따져봤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오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혐의),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끝에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천지일보 2020.6.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천지일보 2020.6.8

◆불구속 강조하면서도 혐의 판단은 미뤄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선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제70조와 201조에 따르면 구속의 사유는 세 가지다.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이다. 단순히 혐의가 중대하다고만 해서 구속영장을 발부하진 않는다.

구속심사 전부터 영장 발부 여부를 가릴 핵심 내용 중 하나로 삼성 총수라는 이 부회장의 지위가 증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가 꼽힌다.

이미 검찰은 1년 7개월가량 장기간 수사를 끌어오며 50여 차례 압수수색, 110여명에 대한 430여회 소환 조사 등을 벌였다. 이번에 영장심사를 위해 제출한 수사기록만 하더라도 400권 20만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 때문에 원 부장판사는 많은 증거가 확보됐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을 불구속한다고 해서 중요한 증거가 훼손될 우려가 적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역설적으로 방대한 수사기록에도 원 부장판사가 영장을 발부할만한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원 부장판사는 일반적으로 영장전담 판사들이 자주 쓰는 ‘혐의가 소명됐다’는 식의 표현은 쓰지 않고 “기본적 사실관계가 소명됐다”는 표현을 동원했다.

아울러 향후 재판 과정에서의 공방을 통해 유무죄 여부를 결정하는 게 타당하다고도 했다.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한 판단은 미뤄둔 것으로 풀이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6.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6.8

◆이 부회장, 기소 반대 여론 등에 업을 듯

이 같은 법원의 결정에 이 부회장 측은 얻은 게 많다. 먼저 국정농단 사태 이후 또 다시 구속되는 악몽에서 한 동안은 벗어날 수 있다.

영장을 재청구하기 위해선 형사소송법과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따라 추가 증거와 재청구 사유를 달아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재청구하기는 힘들다.

여기에 이 부회장 측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소집 신청한 상태다. 이에 따라 소집 여부 결정을 위한 부의심의위원회가 오는 11일 열릴 예정이다. 부의심의위에서 수사심의위의 소집이 결정되고, 수사심의위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권고를 한다면 이 부회장 측에 상당히 유리한 형국이 된다.

비록 수사심의위 결정이 강제성이 없더라도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황에서 수사심의위까지 거스르며 기소하는 건 검찰에게 굉장한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기소를 강행한다면 커다란 부정적 여론에 부딪힐 전망이다.

◆장기간 수사 부정 받진 않은 검찰

물론 구속영장을 청구한 시점에서 이미 검찰은 기소하겠다는 마음을 굳힌 셈이지만 부정적인 여론이 없는 것과는 아무래도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다만 검찰도 이번 상황에서 잃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있다. 원 부장판사가 완곡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사실관계가 소명됐다”고 한 점에서 지금까지의 수사가 일정 부분 인정받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원 부장판사가 “재판과정에서 공방과 심리를 거치라”고 한 점도 검찰의 기소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원 부장판사가 이 사건이 기소가 이뤄져 재판에서 사실관계를 다툴 필요가 있다는 심중을 은연 중에 내비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이미 검찰이 기소 방침을 굳혔다고 판단되는 만큼 단순히 재판에 공을 넘겼다고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구속영장 기각 이후 검찰은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아쉽다고는 하지만 강한 표현은 없어서 검찰도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했거나, 큰 기대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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