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유재목

방문을 열자 마루 끝에 걸터앉은 봄볕이 뒤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단장 밑의 냉이꽃들도 끄덕끄덕 인사를 한다 들판엔 아지랑이와 함께 희끗희끗한 것들이 춤을 춘다 연두빛 안개 낀 것처럼 통통해진 앞산
움직이는 게 없는데 온통 들썩인다
소리 나지 않는데 온통 소란하다

방문을 닫자 다시 깜깜해진다
겨우내 아팠다

희망은 문턱을 넘어오지 않는다

 

[시평]

봄은 희망을 가져다주는 계절이다. 겨우내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던 만물이 툭툭 잠을 털어버리고, 부스럭부스럭 새로운 출발의 준비를 한다. 그래서 겨우내 병고(病苦)에 시달리던 사람은 새봄과 함께 병세가 호전되기를 염원하기도 한다.

그래서 방문을 여니, 마루 끝에 걸터앉은 봄볕이 뒤돌아보며 마치 손을 흔드는 듯하고, 담장 밑에 이제 막 돋아나는 냉이들도 겨우내 잘 지냈어, 하며 살랑살랑 인사를 하는 듯하다. 먼 들판엔 아지랑이와 함께 푸르른 기운이 넘실대고, 앞산은 마치 연두빛 안개가 낀 듯이 온통 울렁이는 기운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온통 봄기운으로 들썩이는 듯하다.

그러나 방문을 닫으니, 다시 방안은 어둑한 빛과 함께 겨우내 묵은 퀴퀴함. 웅크린 듯 묵직하게, 버려진 듯이 널브러져 있는 두툼한 겨울이불, 다시 껌껌해진다. 희망은 결코 문턱을 넘어오지 않는다. 푸릇푸릇 살아나는 저 들판 마냥 나의 새봄은, 나의 봄의 그 희망은 언제나 오려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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